김치의 제왕 2편 : 발효의 탑으로
발효의 탑, 그 중심부에 자리한 **‘소금의 제단’**은
왕국의 짠맛을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제단 위엔 바다의 정수로 만든 결정 소금의 수정체가 떠 있었고,
그 빛 덕분에 김치왕국은 언제나 맛의 균형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수정체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젓갈부의 부장, 염장 대령은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염전에서 직접 길어온 소금 한 줌이 들려 있었다.
“짠맛은 단순한 맛이 아니다.
그건 모든 맛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손에 쥔 소금을 허공에 흩뿌렸다.
그러나 그 소금이 공중에서 녹기 시작했다.
곰팡이의 기운이 탑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탑의 천정이 흔들렸다.
검은 점액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며
소금 결정에 닿는 순간, 하얗던 빛이 탁해졌다.
된장 도사는 서둘러 주문을 외웠다.
“소금의 호흡이여, 불순을 밀어내라!”
그러나 그 소리 위로, 거대한 웃음소리가 겹쳤다.
“하하하하하! 숙성은 한계를 넘었다.
이제 너희의 짠맛도 썩어갈 뿐이야.”
무름이 대장의 음성이 탑 전체를 울렸다.
그의 어둠은 소금의 제단을 뒤덮었다.
순간, 탑 전체의 온도가 떨어졌다.
김칫국의 향이 사라지고, 대신 바닷물의 비린내가 퍼졌다.
염장 대령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엔 붉은 김칫국의 잔광이 남아 있었다.
“나는 짠맛의 수호자다.
이 맛이 사라진다면, 모든 김치는 썩게 된다!”
그는 허리에 찬 ‘젓갈 창’을 꺼내 휘둘렀다.
창끝에서 푸른 염분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그 파동이 공중으로 퍼지며 곰팡이들을 밀어냈다.
그러나 곰팡이들은 금세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의 몸은 염분에 닿을수록 더 강해지는 듯했다.
“이것이 너희의 약점이다.
짠맛은 오래가지만, 결국 스스로를 말리게 된다.”
무름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 순간, 소금의 수정체가 깨졌다.
수정이 부서지며 흰 소금 가루가 탑 아래로 쏟아졌다.
염장 대령은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뻗었다.
“안 돼… 짠맛이 무너진다면, 김치는 숨을 잃는다…”
그의 손끝이 부서진 결정에 닿자,
손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건 슬픔의 짠내였다.
배추 기사와 고춧가루 전사가 달려왔다.
“대령님! 물러나세요!”
그러나 염장 대령은 미소 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짠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음 세대로 건너갈 뿐이지.”
그는 자신의 젓갈 창을 붉은 무 칼 쪽으로 내밀었다.
순간, 두 무기의 빛이 하나로 섞였다.
붉은 불꽃과 푸른 염분이 만나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탑의 천장이 갈라지고,
붉은 김칫국과 푸른 염수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 폭발 속에서 염장 대령의 모습은 사라졌다.
대신 탑의 벽면엔, 그가 남긴 문양 하나가 새겨졌다.
> “짠맛은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은 곧 숙성이다.”
배추 기사와 고춧가루 전사는
그 문양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짠맛의 수호자가 떠난 자리엔
새로운 균형의 씨앗이 남아 있었다.
된장 도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짠맛은 쓰러졌지만, 그 염도는 남았다.
이제 탑의 중심이 흔들린다.
곧… 결계의 문이 열릴 것이다.”
탑의 바닥이 울렸다.
그 진동은 왕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모든 김칫독이 동시에 미세하게 흔들리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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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화는 “짠맛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짠맛은 단순히 맛의 한 요소가 아니라,
기억과 생존, 그리고 지켜야 할 균형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염장 대령의 희생은 인간이 ‘균형을 잃을 때’
맛뿐 아니라 관계와 마음까지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짠맛이 무너진 지금,
발효의 탑은 더 이상 안정된 공간이 아닙니다.
다음 화부터는 결계의 문이 열리며,
무름이 대장과의 첫 충돌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