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던 날이 가장 오래 남는다

by 수미소


이번 주말은 유난히 기억에 남을 일이 없었다. 특별한 사건도, 크게 웃을 일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을 것 같은 하루였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큰일보다 아무 일 없는 날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조금 무거웠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 사이, 애매한 공기가 몸속에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평소처럼 준비를 했다. 주말이면 시골로 간다는 이 단순한 공식은 이제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생각을 덜 해야 덜 흔들린다는 걸,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길은 한산했다. 햇빛이 뚜렷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애매한 날씨였다. 라디오를 켰다가 다시 끈다.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엔진 소리가 더 어울리는 아침이었다. 이렇게 운전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작은 쉼이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집 안에 계셨다. 오늘은 대문을 굳이 열어두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잠시 후 방에서 기척이 들린다. 어머니는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내신다.
“왔네.”
오늘은 그 말에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편안했다. 반가움도, 걱정도 과하지 않은 날. 그런 날도 필요하다.


집 안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었고, 공기는 조용했다. 어머니는 오늘따라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소리는 작았고, 화면만 켜져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묻지 않았다. 어머니도 설명하지 않으셨다. 같은 공간에 각자의 침묵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


점심은 간단히 먹었다. 국도 없고, 반찬도 몇 가지뿐이었다. 어머니는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다”고 하신다. 나는 굳이 더 드시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먹는 양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을.


식사 후 우리는 각자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나는 휴대폰을 보았고, 어머니는 창밖을 바라보셨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말을 만들어냈을 텐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후에 잠깐 마당에 나갔다. 바람은 차지 않았고, 햇볕은 얕았다. 어머니는 굳이 따라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마당 한쪽을 정리하다가, 그냥 멈췄다. 굳이 할 일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모든 방문이 의미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해가 기울 무렵, 어머니는 졸린 기색을 보이셨다. 나는 TV 소리를 더 줄이고, 난로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받아들인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행동이 설명이 되는 단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저녁이 되기 전, 나는 돌아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유난히 붙잡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조심히 가라”고 짧게 말씀하신다. 그 말도 담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발을 신는다. 대문 앞까지 나오시지는 않으셨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차에 오르며 생각한다. 오늘 나는 효자인 척을 얼마나 했을까. 사실 거의 하지 않았다. 과장된 행동도, 일부러 하는 말도 없었다. 그냥 와서, 함께 있고, 다시 돌아갔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가장 솔직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잘하려 애쓰지 않고, 의미를 붙이지 않고, 존재만 남기는 것.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이 덜한 방식.


85세 어머니 앞에서, 오늘도 나는 효자인 척했다. 아니, 오늘은 그 말조차 필요 없었다. 아무 일 없던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고, 그 하루가 내 마음 한쪽에 오래 남았다. 다음 주말도 아마 이렇게 올 것이다. 크지 않고, 요란하지 않게. 그리고 나는 또 같은 길을 달릴 것이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그 시간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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