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유난히 조용하게 시작됐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평소처럼 눈이 떠졌다. 겨울의 끝자락인지, 새벽 공기가 지난주보다 조금 덜 차가웠다. 그래도 나는 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이제는 고민이라는 과정이 사라졌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 그것이 부담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차를 몰고 나오는 길,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신호등만 혼자 깨어 있는 듯 깜빡였고, 길 위엔 차가 거의 없었다. 이런 시간에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세상이 나 혼자에게 잠시 빌려준 것처럼 느껴진다. 이 고요한 시간 끝에는 늘 어머니가 있다. 그 사실이 이른 아침을 견디게 만든다.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대문은 오늘도 반쯤 열려 있었다. 일부러 열어둔 건 아닐 것이다. 어머니의 하루가 그만큼 느슨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차에서 내리자 어머니는 이미 마당에 나와 계셨다. 빗자루를 들고 계셨지만, 실제로 쓸고 계신 건 아니었다. 그냥 들고 서 계셨다.
“아직 추운데 뭐 하러 나와 있어.”
내 말에 어머니는 괜히 웃으신다. “가만히 있으면 더 추워.”
그 말이 꼭 맞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나는 빗자루를 받아들고 마당을 대신 쓸었다. 흙 위를 긁는 소리가 겨울 아침을 깨운다. 어머니는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예전엔 내가 그런 시선을 받는 쪽이었다.
집 안에 들어오니 평소보다 더 정돈된 느낌이었다. 불필요한 물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요즘 자꾸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나눈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필요 없는 것만 정리하신다고는 하지만, 그 기준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서다.
점심 준비는 오늘 내가 맡았다. 어머니는 옆에서 앉아 지켜보기만 하신다. “그건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 몇 번 나왔지만, 곧 그만두신다. 예전처럼 모든 걸 가르치려 들지 않으신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역할이 바뀌었다는 걸 어머니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밥을 먹으며 오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반찬을 더 덜어주고, 물을 채워주고, 국이 식지 않게 신경 썼다. 말보다 손이 더 바쁜 하루였다. 어머니는 그걸 눈치챘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신다. 감사의 표현은 없었지만,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후에는 방 안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어머니는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설명을 덧붙이신다.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가, 다시 사진을 넘긴다. 기억을 재촉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규칙이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지금보다 훨씬 젊고 단단해 보였다. 그 시절의 어머니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도 왔네” 정도였을 것이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해가 기울 무렵, 어머니는 피곤해 보이셨다. 나는 따로 묻지 않고, 이불을 정리해 드리고 난로 불을 조금 더 올렸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받아들이신다. 예전 같았으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셨을 텐데, 오늘은 그냥 앉아 계셨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떠날 시간이 되자 어머니는 이번에도 대문까지 나오신다. 오늘은 말이 없다. 손만 살짝 흔드신다. 나도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한다. 백미러 속 어머니의 모습이 잠시 흔들리다 사라진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오늘 나는 효자인 척조차 많이 하지 않았다. 말을 줄였고, 표정도 담담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하루가 더 진짜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꾸미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것.
85세 어머니 앞에서, 오늘도 나는 효자인 척했다. 아니, 오늘은 척이라는 말이 조금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이 줄어든 만큼, 마음은 더 가까이 갔으니까. 다음 주말이 오면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