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누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특별한 소식도 없고,
기억에 남을 장면도 없는 하루.
그런 날은
시간이 통째로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기분.
분명히 하루를 살았는데
살지 않은 것 같은 날.
우리는
사건이 있는 날을 기억한다.
무언가를 이룬 날,
크게 웃었던 날,
상처를 받았던 날.
감정이 요동친 날은
또렷하게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눈에 띄는 변화도 없고,
결과로 부를 만한 장면도 없다.
그래서
그날은 쉽게 지워진다.
“오늘은 그냥 그랬어.”
그 말 속에는
어쩐지 실패에 가까운 기운이 묻어 있다.
그냥 흘려보낸 하루,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하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까.
크게 웃지도 않았고,
크게 울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여러 번 생각했고
여러 번 마음을 정리했다.
겉으로는 고요했지만
안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말하지 않은 다짐,
표정에 드러나지 않은 감정,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판단들.
그런 날의 시간은
조용히 스며든다.
기록으로 남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어쩌면
삶이 숨을 고르는 구간일지도 모른다.
계속 요동치기만 한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요한 날이 있어야
다음 파도를 맞을 수 있다.
우리는 늘
움직임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도
물은 흐른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는
오히려
나의 생각이 또렷해진다.
남의 시선이 잠잠해지고
비교가 느슨해진 틈에서
나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지금 괜찮은지,
지금 이 방향이 편안한지,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질문들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지키는 질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연달아 이어지면
불안이 스며든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
나는 여기 있다고,
나는 움직이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존재는
증명하지 않아도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에도
나는 분명히 하루를 통과했다.
숨을 쉬었고,
생각했고,
견뎠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삶은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건 사이의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의 시간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무의미한 날이 아니다.
그날은
나의 균형을 맞추는 날이고,
나를 잃지 않게 붙잡는 날이다.
오늘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하루는
비어 있지 않다.
변화는
눈에 띄는 장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조용한 날들 속에서
조용히 누적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모여
어느 날
조용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만든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냥
이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에도
나는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