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1. 고양이
우리 집 막내는 고양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치즈 고양이.
어릴 때부터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키우고 싶어 했는데 아토피가 있고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 못했다. 대신 성인이 되고 대학생 시절 여름쯤에, 저녁 먹고 산책하러 나간다며 아무도 몰래 츄르와 덜어줄 그릇을 들고 밖에 나왔다. 실제로 산책은 했다. 어디서 길고양이들이 나올지 모르니까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기대와는 달리 길고양이를 많이 만나진 못했고 길고양이를 봤다고 해도 경계를 심하게 해 간식을 줘도 멀찍이 떨어져 보기만 할 뿐 먹진 않았다. 요즘 세상이 험하니 자신을 잘 지키는 방어일지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막내가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냐면, 남동생이 길에서 주워 왔다.
A4 용지를 담는 상자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새끼 고양이가 있었는데 눈도 못 뜨는 아기였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어릴 때는 사람 아기도 동물 새끼도 잠이 많은가 보다. 낯선 공간에 와서도 쿨쿨 잠을 잘 자고 몸이 찌뿌둥할 때는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우리 집은 절대 조용한 집이 아니다. 사건, 사고가 잦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데시벨이 높은 집이다. 다들 목청이 커서 시원시원하게 대화하는데 이 새끼 고양이와 마주하고는 깰까 봐 방에 넣어두고 문을 살포시 닫았다. 그 후에도 속삭이듯 대화했다.
처음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나조차도 이 생명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물은 의사 표현을 우리말로 할 수 없으니, 손이 사람보다도 많이 갈 텐데 누가 해줄 거냐부터 우리는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라 사실 먹이부터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일단 집에 왔으니, 밖으로 보내는 건 차후의 일이고 당장 막내 밥을 줘야 한다는 동생의 말에 무작정 근처 동물병원에 갔다. 이유식 같은 습식사료를 먹여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동네방네 사료를 찾으러 다녔고 그럴싸한 제품을 선택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밥을 주냐는 것인데 너무 작아서 잘못 먹였다간 코로 들어갈 것 같아서 나는 금방 포기하고 엄마한테 양보했다. 대신 나는 그 외의 이동, 놀이를 담당했다.
그렇게 온 지 3시간 만에 밥을 먹고 적응하기 시작할 때쯤 동생이 막내를 데리고 자취방에 가겠다고 했다. 이유는 자기가 데려온 새끼 고양이이고 이제 막 애착을 형성할 시기인데 우리랑 지내다간 자기가 밀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나버렸다.
다시 만나게 된 날은 그로부터 약 반년만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컸던 몸이 어느새 세 뼘은 넘게 자라있었다. 새끼 때 호기심 가득한 얼굴은 사라지고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서인지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사실 나도 새끼 때 모습만 기억해서 길어진 막내가 아주 낯설었다.
막내는 이제 막 중성화 수술을 하고 와서 정신이 없을뿐더러 수술한 부위를 건들지 못하게 한 이상한 옷도 입고, 반년 내내 같이 있던 주인은 친구들이랑 놀러 나가 처음 보는 공간에 혼자 있게 되었으니 경계심이 극에 달한 모습이 이해되었다.
최대한 막내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 몇 시간은 혼자 두었다. 막대는 옷장 앞에 쭈그려 앉았지만 작은방 안을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며 탐색도 하고 냄새도 맡았다. 몇 시간가량 혼자 두면 심심해할까 싶어 동생이 들고 온 짐 더미에서 낚시 장난감을 꺼냈다. 몸 상태가 어떤지를 모르고 아직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가만히 쥐고만 있었다.
짐작이 가듯 3일 동안은 적응 기간이라 밥도 잘 못 먹고 화장실도 잘 못 간 사태였다.
본가에 온 지 4일 정도 지났을 때 여전히 나는 침대 위에 앉아서 낚시 장난감을 쥐고만 있었고 막내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관심을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랑살랑 흔들어주니 느리지만 장난감을 향해 걸어왔다. 이게 우리가 같이 놀게 된 기념적인 첫날이다.
그 이후로는 작은 방 탐색이 끝났는지 밥도 잘 먹고, 침대 위로도 점프해서 올라오고 책상 위에도 곧 잘 올라갔다. 하지만 막내 입장에서 가장 큰 산이 문지방이었다. 작은방을 나가면 바로 거실이 나오는데 막내 입장에서는 또 다른 세계였고 그 공간이 광활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억지로 데려 나오지 않고 막내가 스스로 나오도록 기다려주었다.
집에 다시 온 지 17일 만에 거실로 첫발을 내디뎠다.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지 작은방에서처럼 시원시원하게 걸어 다녔다. 걱정과는 달리 금방 적응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막내가 본가에 온 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고 집에서 어느 정도 서열 정리가 되었다.
타지역에 살고 있는 언니와 동생은 막내 기억에서 점점 잊어져 연휴 때 내려오면 기겁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엄마는 막내에게 엄마 역할을 배정받았다. 항상 잠을 엄마 곁에서만 자고 깊은 잠을 잘 때에는 등을 엄마 품에 딱 붙이고 대자로 뻗어서 자기까지 한다. 약간은 섭섭한 부분이다. 나는 위에서 보여준 대로 놀이 담당이었다. 자기 친구라고 생각했는지 나한테만 엄청난 수다쟁이로 변한다. 자기가 놀고 싶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거나 간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옆에 와서 재잘거린다. 한참을 옆에서 떠들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실망한 듯 소심한 소리를 내고는 엄마 곁으로 간다. 아빠는 같이 노는 건지 싸우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물고 할퀸다. 상처가 크게 나진 않지만 아빠는 자꾸 문다며 내심 섭섭해하신다. 하지만 막내가 정한 역할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막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면서 자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언어는 당연히 야옹이겠지. 오늘은 어떻게 놀지, 어떤 간식이 먹고 싶은지, 어느 자리에서 쉬고 잘 건지 고민하는 건가? 다소 귀여운 생각들이다.
고양이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와 반대로 섭섭한 부분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다고. 그래서 시간이 나면 최대한 놀아주려 하고 많이 쓰다듬어주려고 한다. 특히 막내는 관심을 많이 바라는 타입이어서 손길을 원하면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스타일이라 그때마다 시원하게 만져주면 된다.
이제 나도 곧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는데 나마저 까먹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실 내가 재밌어서 막내와 열심히 놀아 주지만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 아주 서운한 부분이다. 나를 떠올리고 기억하도록 영상통화를 자주 해야겠다. 귀여운 우리 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