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선

by 썸키

내 주변에는 빛이 바랜 듯 누런색을 가진 것들이 많았다. 아니, 항상 날 따라다녔다.

청바지, 커튼, 전자레인지. 특별히 정해진 항목 없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누런빛이 따라왔다. 때로는 햇볕이 노릇하게 들어오는 방에서 왠지 모를 탁함을 느끼기도 했다. 미세먼지가 많은 탓인지 머리 위를 맴도는 구름 때문인지 밝은 대낮에도 스위치를 켰다.

백색 조명은 투명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을 뽐내기도 좋았고, 아무리 뒤섞여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순간 퇴색된 것들이 사라졌다. 텁텁했던 시야도 맑아졌다. 고개를 들어보면 구름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둥둥 떠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낙엽이 굴러다녔다.

안경 렌즈가 노랗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렌즈를 닦으려고 안경을 벗었고, 그때 애인이 입은 청바지가 맑은 물색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안경을 눈앞에 뒀다 멀리하기를 반복했다. 노랗고 하얗고, 쿨톤이었다가 웜톤이었다가. 해가 환히 뜬 날에도 내 세상은 누런색이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노란 니트가 개나리처럼 샛노란 빛을 띠는 게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마저도 거짓된 색일까 안경을 벗었다. 병아리가 보였다. 개나리와 병아리를 번갈아 보다 안경을 다시 썼다.

커튼을 걷고 흰 책상 위에 안경을 올려두었다. 렌즈만 노랗게 빛났다. 햇살을 머금은 안경인가. 그렇다면 나의 시선이 닿는 곳은 뜨끈해야 하는데. 팔을 스치는 한기에 수면잠옷을 입었다. 아직 반팔은 무리인가 보다.

해가 지고 나면 불을 켜야 한다. 반사 빛이 필요하니까. 어떤 색이든 조명을 켜면 안경알은 다시 차가워진다. 다시 흰 책상 위에 안경을 올려보면 책상과 경계를 이루는 것은 안경테뿐이다. 낮엔 따끈따끈한 눈 맞춤을, 저녁엔 투명한 눈 맞춤을 한다.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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