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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Jan 11. 2018

우리는 패키지가 아니라고요!

프롤로그_다시 쓰는 남매의 성장일기

"도대체 너희 둘은!

이렇게 말문을 여는 순간, 두 녀석의 눈빛에는 동시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엄마 내 잘못이 아냐. 오빠가 잘못한 거라니까!"

"왜 나한테만 떠밀어! 시작은 쟤가 먼저 했다고요."


싸움이건 사건이건, 뭐가 일이 벌어졌을 때, 같은 자리에서 일을 벌인 두 녀석을 함께 혼내려고만 하면 둘 다 매번 이런 반응이다. 왜 우리 둘을 똑같이 혼내느냐, 나보다 오빠가, 나보다 동생이 더 잘못한 거다. 원인은 상대에게 있으니 상대를 더 혼내야 한다!

핏대 올리며 항의하는 두 녀석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녀석들의 논리에 휘말려 사건의 본질은 산으로 가고 만다.


"그럼 너부터 말해봐!"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 어디 누구 말이 맞는지 둘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한다. 둘이 번갈아 하는 얘기를 조곤조곤 듣고 있다 보면 이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말들을 잘했나 싶을 만큼 청산유수인지라 섣불리 누구 하나를 골라 잘못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곰곰 머리를 굴리다 보면 정작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엄마라고 내가 무슨 심판관도 아닌데, 둘이 갈등을 빚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있었던 둘 다 범죄자인 것도 아닌데,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둘이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데...

내가 개입해서 뭔가를 가려내려고 하는 순간, 엄마의 똑같은 사랑과 관심, 아니 오빠나 동생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두 녀석의 본격적인 심리 싸움이 더 치열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 순간 이미 나는 중재자인 내 역할에 실패했음을 절실히 깨닫고 만다.


분명 폭력을 행사했거나 거짓으로 상대를 속였거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혔다면 보호자인 나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더 잘못을 저지른 녀석이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따끔하게 벌을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말 누가 잘못을 했든 간에 더 혼난 녀석은 "엄마 미워!"를 외치며 속상해하고, 덜 혼난 녀석은 잘 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우쭐해져서 까불다가 결국은 매를 번다. 결국 내가 애초에 원했던 남매간의 평화와 우애는 산 넘어 간지 오래고 셋 다 불편한 감정만 남고 마는 것이다.


공평한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어쨌든 싸운 건 둘 다 잘못이니까 깔끔하게 두 녀석 모두의 잘못을 각각 지적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면 다시 도돌이표처럼 녀석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애당초 두 녀석을 하나로 묶어 똑같이 혼내고 시끄러운 싸움을 서둘러 정리하려고 했던 게 잘못이다. 항상 문제는 둘을 패키지처럼 하나로 묶었을 때  더 커지곤 했다.

그렇다고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조곤조곤 타이르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만큼 나는 덕을 쌓지도 못했다.

그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태어난 열두 살 아들, 아홉 살 딸아이를 키우는 일에 매일매일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아이가 하나였다면
좀 더 우아한 엄마가 될 수 있었을까?

본래 우아하지도 못하면서 가끔 나는 하나마나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두 녀석과 하루,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지지고 볶으며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점점 우악스러워지는 나를 볼 때마다, 혹은 너무 예의 바르고 의젓한 외동아이와 그 아이 못지않게 매너 좋은 엄마와 함께 만나서 밥이라도 먹는 자리를 갖고 나면 참 마음이 복잡해진다.

먹고 싶은 것에도 적당한 타협이 없고 식사 중에도 옥신각신 티격태격을 멈추지 않는 두 녀석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은 것이다.


둘째가 조금씩 자라 오빠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침범하며 대들기 시작했을 무렵, 첫째의 친구 집에 우리집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간 적이 있다. 남의 집인데도 집에서 하던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남매를 보며 그만 좀 하라며 타이르느라 바빴다. 우리집이 아닌지라 나름 화를 꾹꾹 누르고 이를 악 물며 적당히 혼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 외아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아이는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 남매의 갈등 상황도 생경한 데다가, 녀석들을 혼내는 나까지 가세하니 그 번잡스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준 것이 무척 미안했지만 집에 돌아오면서 받은 나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다들 우리 집처럼 사는 건 아니었구나'

우리 애들이 유난스러운 건가? 아니면 나의 육아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물론 아이가 하나라 해서 결코 육아가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큰소리 내지 않고도 차분하고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집이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난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가끔 화가 나면 서로의 존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는 녀석들을 볼 때면 맘 속의 무언가가 쿵 내려앉는 것만 같다. 내가 정말 이런 모습을 보려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건 아닌데. 서로 힘들 때는 의지하고, 외로울 때는 친구가 되어주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왜 몰라줄까 아쉬워하며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사실 녀석들이 심한 것도 아니다.

 

세 살 많은 언니와 세 살 적은 남동생 사이에 낀 나는 언니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랄한 말싸움을 해댔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을 질투한 적도 많았다. 그 틈에서 쓸데없이 눈치만 빠삭해지고, 요리조리 내 살길을 찾는 방법을 터득해온 것이 둘째의 강점이자, 애환이랄까.

그렇다면 우리 집 녀석들도 지금 각자의 포지션에서 원하는 만큼의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나름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이따금씩 표면으로 삐죽삐죽 솟아나는 크고 작은 갈등은 녀석들이 각자의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셋, 넷 이상을 키우거나 쌍둥이를 기르는 부모와 아이들은 얼마나 또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그들의 고뇌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꿇어진다.



"순도 100%의 사랑을 주세요"

사실 아이가 둘, 셋이고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엄마와 아빠가 각각 한 명뿐이라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우리 가족의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다. 싱글맘, 싱글파파, 조부모 등등 양육자와 가족의 모습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있다).  

이따금씩 둘째 딸은 오빠 눈치를 보며 내게 살짝 귓속말로 묻는다.

"엄마, 내가 더 좋아? 오빠가 더 좋아? 오빠한테는 절대 비밀 지킬게"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은 알고 있지만, 항상 "둘 다"라는 똑같은 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떤 불화의 씨앗이 될지 알 수 없다.

두 녀석에게 똑같은 양과 질의 사랑을 부어주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솔직히 내 몸이 하나인 이상 똑같은 에너지나 시간을 나눠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더 징징거리는 녀석에게 끌려갈 때도 많고 먹는 취향부터 공부하고 노는 스타일, 잠자는 습관까지 전혀 다른 두 아이에게 각각 다른 방법으로 대해주다 보면 이따금씩 "왜 나는 그렇게 안 해줘!"하는 푸념이 돌아오곤 한다.

백번 공평하게 해주려 애를 써도 단 한번 불만족스럽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아이들은 알까? 나름 신경 쓴다고 각자가 원하는 방법으로 대해주면, 또 어떨 때는 왜 똑같이 안해주냐며 아우성이다 보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사랑을 독립된 개체의 입장에서 100% 다 누리지 못하고, 항상 상대와 쪼개고 나눠서 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갈증과 결핍에 허덕이는 것이다. 뭔가 늘 허전한 것 같은 헛헛함이라면, 가운데 낀 둘째로 자랐던 나 자신이 누구보다 절절하게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올 수 없는 지금을 추억하는 방법

안갯속을 걷듯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육아와 살림의 늪을 겨우겨우 헤쳐와 보니, 어느덧 두 아이가 한국 나이로 열두 살, 아홉 살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덩치 큰 아들 섬이와 마치 어린 시절의 나처럼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드는 딸레미 콩이를 보면서 해가 갈수록 만감이 교차한다.

그동안 그렇게 훌륭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나름 애는 썼다고 항변하고도 싶고, 지난 시간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며 중2병 등을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엄마인 나의 소박한 바람은 그저 우리가 한 가족으로 만난 이상 내가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는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방문을 쾅 닫고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춘기가 오더라도 엄마의 시답잖은 농담 한 마디에는 피식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서운한 일이 생겨서 싸우게 되더라도 절대 대화의 끈은 놓지 말았으면, 그리고 우악스럽고 거친 엄마일지라도 이말 저말 다 나눌 수 있는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주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시 봐도 마냥 귀엽기만 한 아이들의 어릴적 사진과 어설픈 말로 쫑알쫑알 나누던 얘기들을 놓치지 않고 끄적이던 오래전 육아일기를 이따금씩 꺼내보면서 문득 이렇게 흘러만 가는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아쉬워졌다.

비록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아무 말이나 해도 기특해서 우쭈쭈 해주던 나이는 지났지만, 때로는 전쟁처럼 치열하고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각자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더욱 관찰하고 싶어 졌다.


너희 둘이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닮았는지, 때로는 원수처럼 치열하게 싸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서로를 의지했는지, 똑같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패키지는 아니지만,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언제가 됐든 이다음에 둘이 서로 기대어 앉아 울고 웃으며 읽을 수 있다면 그저 족하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섬이 콩이 그리고 엄마 아빠의 성장일기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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