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things
구부러진 비탈길
커다란 바퀴 달린 가방
풍선이 점점 커질 때
열쇠와 자물쇠
카페라테
드라마 <마더>의 아홉 살 소녀 혜나는 자신의 ‘좋아하는 것’ 노트에 적힌 내용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 찰나의 미소에 속아 안심한다. 어쩌면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그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선생님의 표정은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다. 혜나가 적어 내려 간 목록들 이면에 숨어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친엄마에게 맞고 떠밀릴 때, 엄마의 애인에게 학대와 조롱을 받을 때마다 아이의 초점은 현실 너머로 날아간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주문처럼 외운다.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 벅찬 고통들을 혜나는 그렇게 견뎌왔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아동학대 관련 뉴스들의 제목만 봐도 고개를 돌리고픈 요즘이다. 부모여서 참을 수 없고, 엄마이기에 더 아픈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굳이 드라마로 확인을 해야 할까 망설였지만 어느새 화면 속 아이의 말간 얼굴을 응시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잔혹한 액션이나 호러,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허구의 이야기에 특수효과와 CG를 덧입힌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장르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적당히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잔인한 스토리와 장면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굳이 장르물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괴로운 상황에 처하는 영화들도 버거웠다.
몇 년 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극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둘이 어찌나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던지 객석의 불이 켜진 후 남편은 "마치 삼일장이라도 치른 것 같아." 하면서 비틀비틀 걸어 나오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바뀌는 것들이 종종 있다. 모유수유 때문에 한동안 매운 것을 멀리하다 보니 아이처럼 싱겁고 순한 음식들이 입맛에 더 맞고, 보고 듣는 것도 아이의 시선과 수준에 맞게 자가 검열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들은 서서히 피하고 거친 욕설이 나오는 영화나 예능들도 되도록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조심하곤 한다. 아직 어린 내 아이에게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나 또한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거나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아이들을 온실 속 화초처럼 가둬두고 좋은 것만 보게 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친구들처럼 투닥투닥 싸우다가도 결국엔 하하 호호 웃으며 미안해, 괜찮아, 화해하고 다시 평소처럼 평온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의 뽀로로 친구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는 생존할 수도 없을뿐더러, 혹여 함께 모인다 하더라고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얽히고설킨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맑고 투명한 동심과 그야말로 '팩트 폭격'의 큰 간극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세상의 민낯을 큰 충격이나 아픔 없이 자연스레 알아가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할까, 그것이 부모 된 나의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였다.
잊을만하면 한 뼘씩 자라고 있는 큰 아들 섬이와 둘째 딸 콩이가 삶의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삶 이전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먼저 배워야 했다. 섬이가 세 살 때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이듬해에는 외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태중에 둘째를 품고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일을 감당하는 것 못지않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가족과의 이별을 이해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그저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에둘러 설명하고 넘긴 그때 일들을 섬이는 요즘도 불쑥불쑥 이야기하곤 한다.
"할머니가 나 생크림 케이크 많이 주셨는데... 할아버지는 소시지도 좋아하셨는데... 소시지는 건강에 안 좋은 거죠?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지금 나 보고 계실까?"
한동안 섬이는 몸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유난히 겁을 냈다. 누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그래서 우리 할머니처럼 암이래요?"
하며 어린아이가 뜻도 모르는 병명을 콕 집어 얘기하는가 하면, 외할머니한테 편지를 쓸 때는
"할머니 병 걸리시면 안 돼요!"라는 직접적인 멘트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아프다는 것, 그래서 세상을 떠나고 가족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두려움과 불안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나는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 깊은 얘기를 차근차근 물어보지 못했다.
어느 겨울, 섬이도 나도 심한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팠던 적이 있다. 둘 다 약을 먹고 끙끙 앓으며 누워 있는데, 그 와중에도 섬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질까 봐 무서워서 자꾸만 훌쩍훌쩍 울었다. 정작 본인이 얼마나 아픈지도 모른 채 잠을 설치는 아이에게 나는 가만히 이어폰을 끼워 주었다.
내가 노래를 들려줄게
내가 휘파람 불어줄게
맑은 너의 눈 보며 맨발의 널 보며
내 마음도 깨끗해져요
우린 너무나 먼 곳에 한참을 달려도
널 만나 행복해졌어
이제 노래를 들려줄게
옥상달빛의 '선물할게'를 들으며 아이는 그제야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자고 있는 얼굴 위로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살면서 이런 진통제 한두 개쯤은 만들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우리에게 종종 다가오는 아픔들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지만, 이렇게 잠시 잊을 수는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터득해온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진통제가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주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저 잠시 잠깐 뇌가 그 통증을 망각하게 하는 일시적인 묘책일 뿐이지만, 살면서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곳곳에 만들어 놓으면 가끔 숨통이 트일 때가 있다. 그것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섬이처럼 그림 그리기이거나 콩이처럼 아가 적부터 가지고 있던 이불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될 수도 있다.
Raindrops on roses and whiskers on kittens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 새끼 고양이의 콧수염
Bright copper kettles and warm woolen mittens
반짝이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털장갑
Brown paper packages tied up with strings
노끈 묶인 갈색 소포 꾸러미,
These are a few of my favourite things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when the dog bites
개한테 물리거나,
when the bee stings
벌한테 쏘이거나,
when i`m feeling sad
마음이 울적할 때,
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and then i don`t feel so bad
기분이 좀 나아지지
폭풍우가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는 무서워 벌벌 떠는 남매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우르르 쾅!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박자를 맞춰, 번쩍번쩍 창문을 찢고 들어오는 번개 빛을 한 몸에 받으며 춤을 추고 노래한다. 어느새 아이들은 두려움을 잊고 마리아의 노래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보태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마리아가 떠난 후에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이 노래를 부른다.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일상을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을 들춰보면 그만큼 견뎌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마치 기분이 울적할 때 달콤한 초콜릿이나 매콤한 음식을 찾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맘을 달래주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견딜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의 씁쓸함과 달콤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신기하게도 등을 맞대고 있다.
요즘 들어 음악을 듣는데 심취해 있는 콩이는 언제부터 엄마의 핸드폰 안에 자기만의 음악 리스트를 쌓아두기 시작했다. 신이 날 때는 댄스 뮤직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날씨가 우중충한 날에는 소녀감성 가득한 발라드를 들으며 분위기를 잡는다. 엄마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만 듣고 보던 녀석들이 어느새 이만큼 커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도 고르고, 영화나 책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날 오후, 콩이가 잔뜩 심취해서 따라 부르고 있는 노래들을 모른척하며 잠자코 들어 보았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
다 잘 될 거라고 넌 빛날 거라고
넌 나에게 소중하다고
-커피 소년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아이유 (이상은) '비밀의 정원'
둥근 해가 뜨면 제일 먼저
기분 좋은 상상을 하지
하나 둘 셋 자리에 일어나
하마처럼 입을 쫙 하품을 한 번 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번쩍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
즐거운 상상을 맘껏 즐겨 잊지 말고
Happy Happy Things
-제이 레빗 'Happy Things'
아홉 살 딸아이의 노래를 듣는 내내 오히려 내 맘이 평온해졌다. 기분 좋은 말로 토닥토닥 위로를 받는 기분이랄까. 아이가 차곡차곡 쌓아놓은 재생 리스트는 자신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익숙했던 서울의 것들과 헤어진 채 낯선 더블린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해오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버거워할 때마다 "그래도 너희는 누구보다 감사해야 해!" 하고, 추상적인 말로 얼버무리며 아이들을 밀어붙이곤 했다. 그 맘을 들여다보고 다독이기보다는 차라리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약 삼아 아이들이 힘들거나 슬퍼할 새도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욕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어른인 내가 보기엔 별 것 아닌 일일지라도 아이인 본인의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 투성이라는 것을, 나 역시 어린 시절을 겪어왔으면서도 가끔 잊었던 것이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견뎌내고 있었다. 뽀로로의 세상 밖에는 괴로움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그것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찬찬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더블린에 온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썼던 일기가 생각났다.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좌충우돌하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여러모로 안정된 지금은 그래도 감사할 일들이 많다.
2016년 9월 23일
섬이가 네다섯 살 때였을까. 태어난 지 몇 년 안 된 동생이 녀석의 삶 곳곳에 침입해 혼란을 가져올 무렵, 아이의 입에서 ‘슬픔’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장난감을 망가뜨린 동생 때문에 속상해하다가 갑자기 “내 마음속에는 슬픔이 많아요” 하며 엉엉 울어대는 녀석을 안고 나도 마음이 무너졌었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섞여 있듯이 아이에게도 기쁘고 즐거운 감정이 있으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도 있는 법이라고 육아책들을 통해 익히 알아왔건만, 아이 스스로 ‘슬픔’이란 단어를 내뱉어버리자 초짜 엄마의 가슴은 죄책감으로 조여왔다. 저 어린것에게 벌써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다니...
부정적인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느끼고 표현하게 해주되, 다만 그 마음을 모른척하지 말아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까지는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나이로 일곱 살, 이곳 아일랜드에서는 여섯 살이지만, 어느새 학교에 입학한 콩이가 요즘 ‘외롭다’는 말을 종종한다. 몸으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아직 영어를 전혀 모르니 소통할 방법이 없고, 어린아이들은 먼저 다가가거나 배려하는 것에 서툴기 마련이라, 스스로 영어가 늘 때까지 고립된 섬처럼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얼마나 남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놀고 싶은지를 잘 아는 터라, 그 외로움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묵직한지 말하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었다.
“난 아직 학교에서 외롭다고!”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집 앞으로 혼자 뛰어나가 씽씽이와 자전거를 한참 타고 돌아와서도 외로움이 해소되지 않아 이 말을 내뱉을 때, 처음 섬이의 입을 통해 ‘슬픔’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처럼 다시 마음이 덜컹 내려앉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다행히 망망대해에서 손을 휘젓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지는 않았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홀로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사실, 씨익 미소까지 짓고 있다.
사람이 외롭다는 것.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말이 통해도 안 통해도 무작정 외로워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안 것이 언제였는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누구나 알게 되고, 결국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기에 실은 조금 기쁘기까지 하다. 콩이의 일곱 살 외로움이 이른 지 늦은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 진심의 무게가 내 것보다 덜하진 않기에, 한창 쓸쓸한 녀석이 더 기특하고 또 안쓰럽다.
“엄마도 지나 보니 이상하게 슬픔 같은 것, 분노, 짜증, 외로움, 서러움 같은 아픈 감정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곤 했어. 살면서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 녀석들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친구가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 것들이었어. 자신을 알아 달라고 생각날 때마다 내게 와서 징징거리는 거지. 그것을 회피하고 밀어내면 정말 해피해질 것 같았지만, 실은 미안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거야.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어른이 되어도, 그 감정들을 안아주지 못한 예전의 내가 더 또렷하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아.”
시간이 더 지나면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을까?
“Are you happy?”
아일랜드에 온 이후로 이런 인사를 종종 들었다. 인사라고 하기엔 ‘happy’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겐 남달라서, 내가 불행해 보이나? 행복한지 아닌지 진지하게 궁금한 건가? 별별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잘 지내냐는 여느 안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난히 콩이의 기분이 좋아 보일 때 나는 종종 이 말을 건넨다. 그러면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해준다.
삶을, 하루하루 매 순간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릴 수는 없다는 거 잘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의 명랑한 끄덕거림에 나도 위안을 받고플 때가 있다.
네 외로움, 네 슬픔, 버리지 않고 잘 안아주고 있지? 행복이라는 주머니에 함께 넣어서 잘 데려가 주자. 살살 달래면서 친구 해주자. 그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생길 것 같아.
"Are you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