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Feb 19. 2020

프롤로그 -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벌새>를 본 후 떠오른 사람들

영화적인 아름다움이나 흥분을 두 시간 잘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 내 몸에 칼자국도 있고 피도 나고, 여기저기 긁히고 상한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영화.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자꾸 무언가가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뱅뱅 맴도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요즘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이다. 칸 영화제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 유수의 영화제를 거쳐 아카데미까지 장악해버린 <기생충>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외국에 살고 있어서인지 더 뿌듯하고 감격스럽다. 영화 못지않게 탁월한 통찰력과 재치가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롭다. 그중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의 얘기처럼 <기생충>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수많은 생각들을 연이어 끄집어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기생충>에 이어 얼마 전 나는 또 한 편의 그런 영화를 만났다. 


지난해부터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더블린에서는 볼 방법이 없었던 <벌새>를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감상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남편도 옆에서 코를 골고 있는 곤한 밤, 어둠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홀로 영화를 보며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 또 적셨다. 이유 모를 그 울음은 다음날, 그다음 날도 마음속에서 그르렁그르렁 계속되었다. 작은 몸집, 또랑한 얼굴을 한 '은희'라는 아이가 지금도 어디선가 종종거리고 있을 것만 같아 안쓰러웠다. 처음에는 내가 그 아이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아이의 친구이자 언니였다가, 이제는 엄마이자 선생님이 되어 예쁘고 미안하고 아파서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영화 <벌새>의 소녀 은희

<벌새>는 중학생 2학년인 '은희'라는 아이가 199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한 편의 성장영화다. 그 시절 대부분의 집안이 그랬듯, 아들이 딸보다 더 귀하고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분위기 속에서 은희는 오빠보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삼 남매의 막내였다.

돈이 많거나 공부를 많이 한 부모님을 둔 대치동의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동네 떡집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이따금씩 오빠 언니와 떡집에서 조막만 한 손이 아프도록 일도 돕고, 자주 끙끙 앓는 엄마의 목 뒤에 파스도 붙여줘야 하는 은희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고 학교 생활도 그저 그렇지만, 눈만 마주쳐도 좋은 남자 친구도 있고 한문 학원에서 함께 공부도 하도 가족의 비밀도 공유하는 단짝 친구도 있다. 그들 덕분에 퍽퍽한 일상에 때로 윤기가 흐르기도 하지만, 믿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안겨주는 배신과 상처 때문에 죽을 것처럼 아프고 버겁기도 하다.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나조차도 싫어지는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나타난다. 한문을 가르치는 김영지 선생님은 은희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은 데도 깍듯한 존댓말로 학생들을 대하고 성급하게 은희의 사생활에 개입하거나 어쭙잖은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은희를 담담히 바라보며 푸념과 질문을 들어주고, 때로는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축 처진 은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작은 벌새처럼 파닥거리느라 힘겨웠던 은희는 그녀 곁에 기대어 가끔씩 쉼을 얻고 안도한다.

은희에게 한문 선생님은 그 시절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이자 어른이다.

영화는 유년기를 보낸 누구라면 다들 경험했을 학교생활, 가족 관계, 친구와 이성문제 등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보편성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삶과 추억 속으로 어느 순간 깊숙하게 훅 들어오고 만다. 그렇게 들어와서는 잊고 있었던 작은 기억들과 상처들 여기저기를 건드리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어른들과 너무 보고 싶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기어코 끄집어낸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왜 내가 기억의 몸살을 끙끙 앓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두 개의 질문 때문이었다.


“어린 은희였을 때 내게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던가?”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누군가에게, 아니 내 아이들에게조차 괜찮은 어른인 걸까?”




삼 남매 중 둘째 딸인 나는 태어나기 전에 성별을 알 수 있는 요즘이었다면 아마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외갓집에서 나를 낳은 엄마는 또 딸을 낳은 죄가 커서 시댁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어느 부잣집 대문 앞에 두고 갈까 생각도 했단다. 우여곡절 끝에 나를 안고 돌아간 밤, 할머니는 불도 떼지 않은 냉골 방에 우리 모녀를 재웠다고 했다. 그래도 내 덕에 태어날 수 있었던 남동생이 생겼고, 가운데에 어정쩡하게 낀 채로도 씩씩하게 눈칫밥을 먹으며 덩치 크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분명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나의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영양분을 부어준 고마운 어른들이다. 하지만 살을 맞대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상의 남루함과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들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가족이란 존재기에, 돌아보면 서로를 아프게 했던 일들도 맘속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6학년쯤부터였을까. 그전까지만 해도 잘 따랐던 할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미워지기 시작했고, 그가 미울수록 옆에서 고생하고 일만 하는 할머니와 엄마는 더 안쓰러웠다. 먼 나라에서 일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돌아오는 아빠는 만날 때마다 낯설기만 했다.


슬프게도 선생님들은 대부분 차별을 하는 어른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익히 알아버렸고, 머리가 클수록 노골적인 차별과 무시를 더 빨리 알아차리는 눈치 빠른 학생이 되어갔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은희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선생님들에게 닿고 싶어 열심히 마음을 뻗어보기도 했다. 잠깐씩 왔다가는 언니 같은 교생 선생님들이 참 좋아서 떠나고 나서도 열심히 편지를 쓰기도 했고, 자습시간에 소설책을 읽는 나에게 "넌 참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하며 싱긋 웃어주던 문학 선생님을 볼 때마다 행복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나를 감싸는 세상이 달라 보일 때면 예쁜 시상을 떠올려 보라고 우리들에게 영감을 부어주던 낭만적인 선생님도 있었다.


이제 어른이라는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나는 뭔가 또렷한 해답을 알려주고 명쾌한 길을 열어주는 어른이 아니라, 나도 모르겠는 흔들리는 마음을 같이 들여다봐주고 있는 그대로의 그 철부지를 예뻐해 줄 누군가가 절실했던 것 같다.


“전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라고 불쑥 고백하며 한문 선생님을 와락 안아버린 은희처럼, 그 시절의 나 역시 온몸으로 가만히 내 무게를 받아줄 누군가를 찾아 마음을 열고 싶었다.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아직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이상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선머슴아 같던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던 선배가 있었다. 한 학년 위지만 학교에 늦게 입학해서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그녀의 밝고 환한 에너지가 좋아서 선배를 좇아 풍물패에 들어갔다. 내가 무슨 노래를 부르면 어쩜 나랑 좋아하는 노래가 같냐며 신기해하고 강의가 빌 때면 북과 장고를 매고 따라오라 하고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진도 아리랑을 가르쳐주며 "옳지!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퍼부어주던 그녀였다.

늦게까지 풍물패 사람들과 술을 마신 어느 날, 선배는 집이 먼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워주었다. 아침에 깨보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학교 앞 작은 서점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는 가끔씩 시급 대신 책으로 페이를 달라고 해서 좋아하는 책들을 모으는 것이 낙이었다. 방의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찰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읽고 쓸 거라며 내게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한 권 가져가라 했지만 그녀의 땀과 애정이 어린 책들 사이로 섣불리 손을 내밀 수 없었다.


그 해 가을, 선배는 학교 앞 큰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늦은 밤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피하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지만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아무것도 모른 채 강의실에 들어선 나는 소식을 듣자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영정사진으로 남은 그녀 앞에서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엎드려 엉엉 울다가 친구들에게 끌려 나왔다. 모든 장례를 마친 후 가족들과 그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을 잃은 수많은 책들만이 책장 가득 남아 있던 쓸쓸한 그 방의 공기가 지금도 이따금씩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예뻐해 주고 토닥여주는 어른을 알게 된 것도, 그런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장례, 그런 형식적인 절차조차도 모두 처음 경험해보는 낯설고 무서운 일이었다.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방송국에서 만난 선배들은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나보다 열 살 이상은 많은 메인 작가와 PD들은 늘 어려웠고, 그중에는 유독 무섭고 모진 사람도 있었다. 끝없는 일에 치이고 사람들이 주는 상처에 치여 화장실에 앉아 훌쩍훌쩍 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와중에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도 있어서 눈물을 훔치고 일어설 수 있었다.  

지난한 사회생활을 거쳐 나에게도 이끌고 가르쳐 줄 후배가 생기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선배였던가를 돌아보면 참 부끄럽다. 꼰대나 폭군처럼 내 의견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근하게 아랫사람을 감싸거나 챙기는 타입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 일만 하기에 급급했던 조금은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을까.



영화 <벌새>를 보며 처음에는 은희라는 아이의 서늘한 눈망울에 푹 빠져 감정이입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은희의 엄마와 주변의 어른들의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은희는 끊임없이 자신을 조금 더 바라봐주고 예뻐해 달라는 눈빛을 엄마에게 보내지만 그런 은희의 마음을 읽어낼 여유가 없는 은희 엄마의 텅 빈 표정과 쓸쓸한 뒷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 아들 녀석이 심리 평가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다양한 문항에 써 내려간 답들 중에 우연히 하나를 읽게 되었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이라고 시작되는 문장의 뒷부분을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녀석은 너무나 심플하게도 '바쁘다'라는 세 글자만 써 놓았다. 솔직히 남편과 나는 그 세 글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서서히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시간을 쪼개어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그저 바쁜 사람으로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의 엄마 아빠도 항상 생업에 바쁜 분들이었고, 마주하는 시간보다는 무언가로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언젠가 주방에서 한창 바쁜 내게 딸아이가 놀아달라고 졸라댄 적이 있었다. "엄마 저녁 준비하는 거 안 보여?" 하며 무심코 등을 돌리고 난 후, 아이가 바라보는 내 뒷모습이,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내 엄마와 닮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집안일을 하다가도 우두커니 정신을 놓고 있으면 지금의 내 나이 때의 엄마 모습이 자꾸 생각나곤 한다. 알 수 없는 한숨을 가끔씩 내쉬느라 조용히 들썩이던 그녀의 작은 등. 걸레질을 하다가 갑자기 쏟아내던 이유 모를 눈물. 그녀 역시 우리 삼 남매에게 좋은 엄마,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중이었을 것이다.

은희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엄마. 그녀의 시선과 마음이 머무는 곳은 어디였을까.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때까지 살면서 어떤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도 아이를 갖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적에 흔히 묻고 답하는 질문들은 대부분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니? 어떤 대학에 갈 거니?' 등등이었지, 어떤 엄마, 어떤 아내,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은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여자라고 모두 아내나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니, 굳이 어릴 적부터 그런 생각을 안고 자랄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률은 반반이니, 절반 가량의 가능성 때문이라도 한 번쯤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도 하고 준비도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괜한 핑계를 찾아본다.


<벌새>를 보고 난 후 나의 과거와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눈앞에 그려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했던 많은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더 따뜻한 선배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스멀스멀 밀려오다가도, 지금 내 곁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친구에게 괜찮은 어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부끄러워다. 이 녀석들이 커서 나를 어떤 엄마로, 어른으로 기억할까를 떠올리다 보면 조금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른이  지금의 내가 과거의 어린 나와 마주한다면 무엇을 해줄  있을까.'

영화 속 은희와 한문 선생님이 함께 있는 모습은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싶은 애틋함, 귀 기울여 뭔가를 들어주고 싶은 측은지심이 만들어낸, 어른인 나와 소녀인 내가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그렇게 대단하고 큰 사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힘을 주어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 애쓰고,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아이들을 다그치는, 키도 목소리도 한 뼘씩 큰 어른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이를 존중하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그저 들여다보고 기다려주는 사람.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말하던 한문 선생님처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부족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같이 끄덕여주는 사람이면 족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깊은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두려움과 답답함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을 때가 많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스스로가 못 미덥고 세상이 무섭기만 한 내가 이 아이들을 잘 이끌어줄 자신이 없다는 불안이 아이와 나의 틈 사이를 비집고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에서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

도움을 주고, 어려움을 막아주는 일도 아이들에게는 필요하지만, 스스로 해내고 어려움을 온몸으로 부딪혀 겪어냈을 때 아이인 나는 한 뼘 더 자라났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고, 어른은 그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는 편견이 때로는 아이들이 길을 찾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무슨  말을 걸어야 할까,  

얼마 전 한국에서 놀러 온 지인이 아이들에게 책을 몇 권 가져다주었는데, <잔소리 없는 날>과 <엄마 없는 날>이라는 제목만 보고도 환호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그와 함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일방적인 '잔소리'로 느끼지 않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깊어졌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무엇보다도 나를 즐겁게 해 준 것은 책이고, 음악이고 영화였다. 현실이 힘들 때면 영화 속에서 웃음과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반면 영화 속 주인공 슬픔과 상처를 겪을 때면 기꺼이 함께 이겨낼 힘과 자신이 생기기도 했다.  

때마침 봉준호 감독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I think we use only just one language,
The Cinema.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바로 영화죠


가끔씩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화답하던 녀석들의 모습이 떠올라, 문득 아이들에게 영화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 졌다.

아가 적부터 우리가 함께 봤던 추억의 영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를 성장시키고 자라게 했던 영화.

아프고 괴롭더라도 한 번쯤은 꼭 봤으면 하는 무거운 영화.

내가 만끽했던 이 즐거움을 아이들도 절대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영화.

하품이 나도록 지루해도 끝까지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지금은 너무 어려서 볼 수 없지만, 어른이 되면 꼭 찾아보라고 몰래 얘기해주고 싶은 영화.

자려고 누워도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뱅글뱅글 남아 있는 영화.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로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대단한 어른은 아니어도 소소한 수다를 나누는 괜찮은 친구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영화로 말을 걸어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