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Apr 03. 2020

네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처음 울던 날

아이와 함께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 리스트

며칠 전이었나,

저녁밥을 다 먹어갈 때쯤 너희들에게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여줬던 것 기억하니?

혼자서 유튜브를 돌려보다가 7분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작품을 발견했는데, 다 보고 나니 마음이 아주 따뜻해지는 것 같았어. 별다른 대사도 없고 거창한 스토리도 아니고, 그저 딸아이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묶어주느라 끙끙대는 서툰 아빠와 귀여운 소녀, 그리고 그 둘을 기다리는 엄마의 이야기였는데, 그 속에 담긴 많은 감정들이 비눗방울처럼 퐁퐁 솟아나는 느낌이었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을 너희들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내 예상처럼 너희 둘 역시 아주 맘에 들어했어. 특히나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많은 섬이는 저런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다며 놀라워했고.

이럴 때 엄마는 기분이 쨍하게 좋아. 내가 재미있게 본 것을 너희들도 진심으로 즐겨줄 때 말이야.


https://youtu.be/kNw8V_Fkw28

아이들과 함께 감상한 <헤어 러브>(Hair Love, 2019)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달 전쯤, 심심해하는 너희들에게 애니메이션 한 편을 추천했을 때도 꽤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해. <내 이름은 꾸제트>라는, 솔직히 나도 제목과 아주 기본적인 정보 말고는 잘 모르는 작품이었는데, 마침 너희들도 보고 싶다고 흔쾌히 맞장구를 쳐줬잖아.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꾸제트’라는 아이가 비슷한 처지의 소년 소녀들과 보육원에서 모여 지내는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라서 혹시 겁이 많은 콩이가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꾸제트뿐만 아니라 함께 지내는 '시몽', '까미유'와 같은 다른 친구들의 매력에도 흠뻑 빠져서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감상했었지.

열두 살과 아홉 살인 딱 너희 또래 아이들이 등장해서였을까. 영화가 끝날 무렵 울먹이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꾸제트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너희 남매의 모습이 참 예뻤어. 우리는 감사하게도 네 식구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곁에는 부모를 먼저 잃거나 헤어진 아이들도 있고, 새로운 부모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친구들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너희들은 자연스럽게 알아갔지. 그렇게 저마다 다른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는 것도 말이야.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인 <내 이름은 꾸제트(My Life As a Courgette)>는 여느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특한 캐릭터들이 따뜻한 색감과 질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꾸제트를 만난 후, 나는 요 며칠 동안 너희들이 세상에 나온 후 처음 봤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봤어. 실은 엄마, 아빠가 워낙 영화광이어서 너희가 아주 아가 적부터 꿈꾸던 소박한 로망 같은 것이 있었어. 내 아이가 몇 살쯤 되면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함께 감상하며 울고 웃으며 공감할 수 있을지, 그 순간을 늘 고대하고 기다려왔거든. 그래서 엄마는 일찍부터 너희들에게 이런저런 애니메이션들을 참 많이도 들이밀었지. 전적으로 나만의 취향에 치우친 일방적인 주입(?)이었지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참 잘 따라와 준 것 같아.


네 살 소년의 닭똥 같은 눈물 <강아지 똥>

섬이가 네 살이었을 때였나, 처음으로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장편 애니메이션을 감상했었어. 네게 책으로 먼저 읽어주었던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 똥>이란 작품이었는데,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자그마한 강아지 똥의 일생이 짠해서 보는 내내 마음이 어찌나 아리던지.

어린 너도 엄마인 나도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함께 듣고 집중하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역사적인 순간을 아직도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어. 내 아이와 이런 찰나를 만끽하는 날이 오다니!


2011 9 21

아빠가 틀어놓은 쇼팽을 듣다가 문득 섬이가 자기는 <강아지 >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얼마  보다가 너무 슬퍼서 엉엉 울던  애니메이션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번이나 보더니 마지막 장면에 강아지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모습을 보고 그런다.. "엄마.. 강아지 똥이 눈으로  하얀 이불을 덮고 자네요  이불이랑 똑같아요." "섬아,  언제 그렇게 컸니?"하고 물으니 "글쎄 말이에요~" 그런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는 "엄마 다시는 강아지  음악 듣지 않을래요 너무 슬퍼서요." 하고 말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점점 커가는  문득 슬픈 걸까. 언젠가    순간을 떠올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책 표지와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 . 정말 소복히 쌓인 하얀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https://youtu.be/4F8PTZfNC3A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와 아이의 노래가.어우러진 <강아지 똥> 엔딩송을 눈물 없이 듣기란 쉽지 않다.


우리들의 'Favorite' <이웃집 토토로>

몇 년 뒤 콩이도 섬이 만큼 자랐을 때 드디어 너희 둘에게 요즘 말로 나의 '최애’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기로 맘먹었지. 그게 바로 지금까지 너희들이 수십 번도 더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란다.

사실, 나는 오랜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했어. 그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거의 다 본 데다가, 너희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와 둘이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일부러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까지 다녀왔거든.

지브리에서 만든 수많은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이웃집 토토로>는 아주 어린 너희들에게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나름 엄선해서 고른 작품이었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아일래드처럼 온통 푸른 산과 들판, 아름드리나무가 화면에 가득하고 그 울창한 숲 속에 살고 있는 '토토로’는 참 신비롭고도 귀여운 캐릭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사츠키’와 ’ 메이’ 자매가 아빠와 함께 시골 어느 마을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오던 첫 장면은 우리 가족이 낯선 아일랜드에서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하고 이사하던 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이웃집 토토로 (My Neighbor Totoro, 1988)

기억하니? 처음 아일랜드의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날, 집안에 침대, 식탁, 소파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급히 장을 보러 마트에 갔었잖아. 급한 대로 당장 필요한 이불보랑 베개, 냄비, 프라이팬, 그릇, 숟가락, 포크 등을 네 벌씩 구입하고는 차도 없이 우리 네 식구는 끙끙거리며 무거운 짐을 날랐지. 그때 어찌나 비가 쏟아지던지 온몸이 홀딱 젖었고, 집 앞에 다 와서야 비가 잦아들더니 예쁜 무지개가 마치 환영인사라도 하듯 우릴 맞아주었잖아.

새로 산 4인용 냄비에 물을 올려 저녁으로 짜파게티를 맛있게 끓여 먹고, 늦은 밤까지 힘을 모아 방을 청소하고 포근한 단잠을 청했던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너희들도 과연 그럴까?

아일랜드에서 처음 이사한 집으로 들어가던 날 우리를 맞아주었던 구름 사이 무지개

토토로를 보다가 엄마는 무척이나 당황했었어. 내가 보기엔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이 전혀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콩이가 엉엉 울면서 방으로 뛰어들어가 버린 거야. 깜짝 놀라서 우는 너를 따라 들어갔을 때

"언니 잃어버렸어. 메이가 언니를 잃어버려서 너무 슬퍼."

하며 훌쩍훌쩍 우는 너를 달래느라 한참이 걸렸던 것 같아. 엄마에게 옥수수를 주겠다고 홀로 길을 나선 동생 메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언니 사츠키가 동네 사람들을 동원해서 메이를 찾아온 마을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어린 너에게 그렇게 슬프고 무섭게  느껴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나도 가끔은 꿈속에서 너희들을 놀이터나 길에서 잃어버려서 엉엉 울면서 찾다가 깬 적이 있어. 엄마인 나도 꿈속에서조차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이 그렇게 공포스러운데, 그 어린 나이에 언니나 동생을 잃어버린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 힘든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찬찬히 생각해본 후에야 알았단다.

나중에 두 자매가 다시 만나서 고양이 버스를 타고 씽씽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콩이가 안심하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놓였었지.

사츠키와 메이가 울던 날 내 아이도 펑펑 울었다.


토토로는 우리들에게 참 많은 추억과 재미의 순간들을 남겨준 만화인 것 같아. 숲을 걷다가 얼굴만큼 큰 나뭇잎을 발견하거나, 우산을 쓰고 걷다가 빗소리가 타닥타닥 귓가를 울릴 때면 우리는 "토토로 우산 같다! 토토로가 비 맞는 것 같다!" 하면서 까르르 웃곤 했잖아. 따스한 봄날 화분에 씨앗을 심고 나서도 메이와 사츠키처럼 쑥쑥 새싹이 돋아나기를 폴짝폴짝 뛰며 빌기도 했고.

그때보다 한참 커버린 너희들이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주저 없이 <이웃집 토토로>를 꼽을 때면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쳐지곤 해.

울고, 웃고, 소리치고 노래하며 반복해서 보고 또 보던 우리들의 지난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거든.

빗물을 가득 머금은 나뭇잎이 떨구는 빗방울들의 소리를 들어 보았나요?


영화로 아이들과 시선 맞추기

그 후로 너희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때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러웠어. 내가 보기엔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너희들이 어느 포인트에서 무서워하거나 슬퍼할지 모르니 항상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내 시선을 맞추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지.

DVD로 소장하고 있던 것 중에  <미래소년 코난>은 첫 시작의 배경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어둡고 메시지가 꽤 철학적이어서 조금 더 크면 보여줘야겠다고 미뤄두었어. <빨강머리 앤>과 <스누피> 시리즈도 대사가 꽤 많아서 걱정했는데, 섬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 함께 보았을 때는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재미있게 즐겼지. 엄마와 아빠가 첫 데이트 때 보았던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그림자로만 그려져서 조금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희들이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서 참 기뻤어.

<겨울왕국> 1편에서 안나가 얼음으로 변해버리고,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지점토로 만들어진 양 떼들이 목소리를 높여 울어대는 장면은 꽤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은 안색이 변하고 무섭다고 도망쳐버렸지. 이렇게 너희의 반응은 내 예상을 자주 빗나가곤 했어.


<토이 스토리 3>를 함께 봤을 때는 영화가 끝나고 오히려 엄마인 내가 너무 펑펑 울어서 어찌나 민망했던지. 그 후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작년에  <토이 스토리 4>를 보러 함께 극장에 갔을 때는 너무나 행복했단다. 마지막 장면에서 콩이와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 둘 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신기해서 같이 울면서 웃었잖아. 언제 네가 이렇게나 컸는지 이젠 영화를 보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뭉클하고도 감사했단다.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엄마인 나와 함께 성장기를 보낸 것만 같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키리쿠, 기리쿠>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감독 미셸 오슬로의 작품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1989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카>, <라이언 킹>, <코코>, <벼랑 위의 포뇨>, <미래의 미라이>, <업>, <곰이 되고 싶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 <폭풍우 치는 밤에>, <인사이드 아웃> <마녀 배달부 키키>, 등등 너희가 좋아하고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던 수많은 작품들의 제목을 떠올리며 생각했어. 앞으로 한 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그 나이에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해줘야겠다고.


참 신기하게도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대부분 어릴 때 처음 만나지만,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될 때까지도 좋은 벗이 되어주는 것 같아. 마치 함께 얘기하고 소통하는 친한 친구처럼 말이야.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곁에 두게 되는 것 같아. 마치 나의 성장기를 함께 공유한 익숙하고도 친근한 존재 같다고나 할까.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너희들의 순간을 사진첩에 새기듯 우리들의 기억 속에도 차곡차곡 남겨두고 싶어서 앞으로도 함께 보고 싶은 많은 작품들의 리스트를 생각날 때마다 적어둘 거야.

너희들이 언제, 어느 작품을 보며 울고 웃을지 미리 예단하진 않을게. 예상을 빗나가는 너희의 반응을 감상하는 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반전의 큰 재미이기도 하니까.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1995>)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와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은 소년이 만나 서로의 꿈을 키워가는 이야기야. 소년 소녀의 풋풋한 로맨스와 바이올린 음악이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할 거야.


바다의 노래:벤과 셀키 요정의 비밀 (Song of the Sea, 2014)는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 이야기와 신비로운 아이리쉬 음악이 어우러져 있단다. 언젠가 우리가 머물렀던 아일랜드를 추억하기에도 무척 좋을 거야.


실뱅 쇼매 감독이 만든 두 편의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10)>와 <벨빌의 세 쌍둥이 (The Triplets Of Belleville, 2003)>는 언젠가 너희들에게 꼭 보여주고 그 감상을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야. 일본과 한국의 감성과는 또 다른 유럽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을 꼭 만끽했으면 좋겠다. 같은 감독이 만든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도 꼭 추천하고 싶어.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무궁무진하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등등 섬이는 이제 볼 수 있겠지만 콩이에겐 아직 조금 무섭고 어려울 수도 있을 거야.


<미래의 미라이>의 남매 이야기를 마치 자신들의 경험처럼 재밌게 즐겼던 너희들이라면, 호소다 마모루의 다른 작품들도 재미있게 봐줄 거라 생각해. 내가 열 번은 본 것 같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특히 추천하고 싶어. <썸머위즈>, <늑대 아이>도 있단다.


아직은 어려서 조금 무리겠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역시 사춘기 즈음 너희가 보았으면 좋겠어. <별의 목소리>라는 단편을 먼저 추천하고 싶은데, <너의 이름은>,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도 분명 계속 이어서 보고 싶어질 거야.




*철저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리스트랍니다. 혹시 자신이 좋아했고, 아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아요. 녀석들에게 더욱 다채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