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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Apr 20. 2020

당신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

우리 사이에 놓인 작은 마음 길


한국에 있는 언니와 기나긴 장문의 문자를 나누던 날이었다.

우리의 시차는 늘 8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서로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는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주로 한국에 있는 언니가 늦은 밤이고 내가 점심 식사 후 조금 여유가 생기는 오후 즈음이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다. 평소에는 소소한 안부를 주고받거나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내며 이곳의 일상을 전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언니는 속상한 일이 많았던지 이런저런 속 얘기를 참 많이도 내게 털어놓았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바로 곁에서 들어줄 수 없는 못난 동생은 토닥토닥 언니를 위로만 해도 부족할 텐데, 자꾸만 이건 이래서 이런 게 아닐까, 그건 이렇게 해봐, 하며 나도 모르게 훈수를 두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나누는 얘기였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련만, 밤이라 더욱 쓸쓸해진 언니와 환한 햇살을 앞에 두고 있는 나와의 온도차는 우리의 문자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내가 쓴 글들을 쭈욱 훑어보니 너무 이성적이기만 한 정 없는 동생이 보여서 갑자기 미안해졌다.

"언니, 내가 언니 속을 더 뒤집었나 싶네. "

서운해할 언니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들어 맘을 먹고 문자를 보내니,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아냐. 내가 이런 얘기 너한테 하지, 누구한테 하겠니."


그 짧은 답글에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데도, 지구 반 바퀴 너머에 있는 내게 일부러 연락을 한 언니의 마음이 그제야 느껴졌다. 내게만 할 수 있고, 내게만 하고 싶었던 속 얘기를 털어놓기 위해 그 밤 말을 건넨 언니에게 무심한 동생은 위로 대신 교과서 같은 충고만 늘어놓고 있었으니 얼마나 더 속이 상했을까. 문자라는 것이 가끔은 숨겨진 마음의 행간을 읽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매개체인 것 같아 답답한 날이었다.


이따금씩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엄마도 말씀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격해져서 그동안 끙끙 앓고 있던 속상한 얘기들을 털어놓곤 하신다. 한참 동안 속에 있는 것들을 두서없이 끄집어내다가 끊기 전에는 늘 그러신다.

"미안하다. 너 걱정할까 봐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별소리를 다했네. 그래도 내가 이런 얘길 너 말고 누구한테 할 수 있겠니."


그러면 엄마의 쓸쓸함이 저 먼 곳에서부터 파도처럼 스르르 내게 밀려오는 것 같아 맘이 쓰리다. 얼마나 참고 참다가 오죽하면 내게 털어놓으셨을까, 그나마 엄마가 꺼낸 얘기들이 저 아래서부터 쌓여 이루어진 빙산의 일각인 것을 알기에 그저 죄송한 둘째 딸은 일부러 명랑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 그런 말씀 말아요. 괜찮으니 실컷 해요! 나 아니면 누구한테 얘기해요. 내가 이 먼 데서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그것도 못 들어 드리면 안 되지!.”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겠니
너니까 믿고 하는 얘긴데.....
너밖에 터놓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더블린에서 지내면서 떨어져 있는 가족, 친구들과 전화나 문자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들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런 말을 터놓을 때가 있다.

상대와 나 사이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다거나, 남몰래 누군가의 흉이라도 보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혹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특별한 대상이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신기하게도 그냥 느낌으로 온다. 어떤 이유로 속상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목소리가 듣고 싶고 생각나는 어떤 친구가 있다든지, 너무 신나고 기쁜 일이 생겼는데  마치 자기 일처럼 들떠서 기뻐해 줄 것 같은 누군가가 그립다거나, 이유를 알 수 없이 가라앉고 우울한 날, 가만가만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어떤 친구가 떠오른다든지......


사람의 마음은 마치 작은 샘물 같아서 아무 파문 없이 잔잔하게 잘 지내가다가도 작은 돌멩이 하나에 동그랗게 동그랗게 작은 물결이 퍼지고, 어느새 그 물결이 걷잡을 수 없는 거친 물살로 바뀌면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계속 고여만 있는 샘물은 썩기 마련이라, 그렇게 파동이 일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휘몰아치듯 같은 생각들이 돌고 돌다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어디론가 흐르는 물길을 내줘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는 법이다.


속이 답답한 날, 누군가와 긴 문자나 통화를 하면서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와 나 사이에 생긴 자그마한 물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막힌 속이 조금 뚫리듯, 이렇게 터놓고 나니 이제 조금 살 것 같다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누군가와 물길을 터놓고 나면 비상연락망이 생긴 듯 든든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는 살길을 마련해놓은 것처럼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내게는 많지 않아도 여러 갈래의 그런 물길들이 있다. 가족 문제로 힘들 때,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면서 힘에 부칠 때, 친구와의 작은 오해로 속상할 때, 낯선 타지 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한없이 우울할 때 "너라서 얘기할 수 있는 건데......" 하면서 말길을 틀 수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다. 8시간의 시차로 떨어져 있는 더블린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터득해온 나만의 생존 방법이기도 하다.

차마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얘기들을 쏟아내고 싶어서 멀리 있는 나를 찾는 지인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소중한 시간을 오히려 기다리기도 한다. 멀리 있어도, 혹은 멀리 있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요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가끔은 어디로도 물길을 열지 못하고 혼자서 꾹꾹 눌러두기만 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물이 삐질삐질 새거나 툭 터져버리는 일도 있다. 그런 경우에 피해를 입는 것은 대개 아이들이나 남편이다. 항상 곁에 있어서 언제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여기다 보니 서로 제대로 된 마음의 길을 만들어놓지 못한 탓이다. 아이들 역시 늘 곁에 있는 엄마가 가장 만만하다는 생각에 남에게는 할 수 없는 아쉬운 소리나 푸념들을 내게 쏟아붓기도 한다. 서로 속이 상하도록 씩씩대며 한바탕 하고 난 후에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내가 한참 늙은 후에도,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듣고 싶은 말을 떠올린다.

"내가 엄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나 또한 아이들과 그런 얘기를 오래도록 주고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리 사이에 작고 예쁜 물길을 터놔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곤 한다.


코로나 19 여파로   넘도록 집안과 2km 반경 안에 고립되어 버린 요즘. 보이지 않는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뉴스를 접하고 화상통화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서만 안부를 전할  있었던 나의 어릴 적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편리하고도 감사한 세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네모난 모니터와 핸드폰만이 직접 만날  없는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은 너무 삭막해서 숨이 막힐  같다.

그럴 때면 혼자 가만히 눈을 감고 사실은 그 안에 맑고 예쁘게 이어진 작은 물길들이 숨겨져 있다고 상상해 본다. 언제든 손을 뻗고 마음을 열면 나의 얘기를 들어줄 든든한 친구들, 그들과 이어져 있는 수 갈래의 물길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나만의 마음지도를 그리다 보면 답답했던 속이 깨끗이 정화되는 것만 같아 가만가만 안심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힘껏 외치는 소리.

아무리 떠들어도 빙빙 돌리기만 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복잡한 얘기.

뚜렷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보다 그런 것들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터득해간다. 핀셋처럼 콕 집어서 속에 있는 것을 꺼내보이지 않아도, 톡톡톡톡 이어지는 문자의 행간으로, 갑자기 안부를 묻는 새삼스런 목소리로 그 마음을 알아봐 주는 세심함이 나이 들수록 더욱 필요해진다.


"사실은, 지금 내 얘기를 들어줄 네가 필요해."

속에 감춰진 그 작은 속삭임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 오늘도 내 마음지도를 펴고 그 사이로 흐르는 샘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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