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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Apr 12. 2020

1년 전 바티칸에서 나누었던 평화의 인사

요즘 나는 1년 전 이맘때의 사진을 종종 들여다본다. 그때 우리 가족은 바티칸에서 열리는 부활절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길목에서건 걸을 때마다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치고, 박물관이나 커피숍, 식당, 상점 등에 들어가려면 길게 줄을 서야 했던 그곳.

분명 이탈리아는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로마, 플로렌스, 나폴리를 오고 가던 여정들은 쉽지 않았다. 늘 한적한 더블린의 우리 동네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어디에 가도 사람에 치이고, 혹여 소매치기라도 당하지 않을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이곳저곳을 누비다 숙소로 돌아오면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곤 했다.

여행객인 우리도 우리지만,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걱정이 되었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로마에 살고 있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들을 보며 매일 출퇴근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것이 고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말았다. 비단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록다운 중인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느새 2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지금 이탈리아의 풍경은, 1년 전에 우리 가족이 걸었던 사진 속 거리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1년 전 사람들로 붐볐던 콜로세움(좌)과 뉴스에 등장한 최근의 모습
계단에 차마 앉기도 힘들었던 로마의 ‘스페인 계단’도 텅텅 비어있다.
부활절을 앞두고 성베드로 성당 광장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을 지금은 볼 수 없다.
Daily mail 뉴스에 실린 성베드로 광장의 모습

성금요일이었던 4월 10일 저녁, 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텅 비어 있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앞에 두고 전 세계인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부활절을 맞아 이곳을 찾은 이들로 가득했던 1년 전과는 무척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작년 부활절 아침, 이른 시간부터 우리 가족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렀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남편이 하고 있는 공부를 위해서,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동일한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의미 있는 미사에 꼭 참여해보고  싶어서 우리는 1년 중 가장 붐빈다는 부활절 시기에 무모하게도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은 어떨까,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서자마자 이미 수많은 인파들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의자가 있는 앞자리에 앉기 위해 전날 근위대 병사에게 입장권을 겨우 얻어내느라 고생한 보람도 없이 도착해보니 티켓은 의미가 없었다.

미사는 11시였지만 오전 8시부터 이미 좌석이 있는 공간은 꽉 차서 통제된 상태였고 그 뒤로 사람들은 어디든 빈 곳이 있으면 자리를 잡고 서거나 앉아 있었다. 미사 전에 전달받은 작지만 제법 두꺼운 책자가 알고 보니 기나긴 미사의 순서지라는 것을 11시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책자 안에는 미사 중간중간에 부르는 찬양과 성경 구절, 기도문들이 쓰여 있었는데,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예배의 순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책 속의 글자들을 열심히 따라갔다. 특히 성경을 낭독할 때마다 각각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올라서서 자기 나라 고유의 언어로 구절을 읽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어로만 알던 성경이 낯선 언어가 되어 광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내가 모르던 지구 저편의 누군가와 조심스레 연결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사가 드디어 끝나갈 무렵, 이제 주변의 사람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 가까이 각자의 자리에 앉거나 서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환한 미소를 띠며 자신의 양 옆에, 앞과 뒤에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서로 포옹하고 누군가는 볼 키스를 나누고, 누군가는 악수를 하며 진심으로 서로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스리랑카에서 벌어진 참담한 테러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의 성당과 호텔에서 8차례의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160여 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치는 참극이 부활절 아침에 일어난 것이다. 다른 이유도 아닌 종교의 분쟁 때문에 부활절 아침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임을 적나라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비극을 알게 된 후, 피부 색도 국적도 다른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언어를 섞으며 나누는 인사였기에 우리의 마음은 더 뜨거웠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든 전쟁과 싸움 없이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당신이 지금 고달픈 삶을 살고 있더라도 잠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이름 모를 사랑이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진심을 다해 타인을 축복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바람이 하나로 응축된 그 따스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나는 내가 왜 그곳에 와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만 명의 세계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드렸던 부활절 미사


1년이 지난 지금, 텅 비어 있는 성 베드로 광장을 바라보며 다시 그날의 인사들을 떠올린다.

어느 버스 안에서 한참 동안 우리 가족에게 이름을 묻고 이야기를 건네던 로마 토박이 아주머니와, 지도를 펴고 숙소 인근의 맛집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친절한 슈퍼 호스트.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나폴리의 산동네에서 오고 가며 마주치던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숙소를 떠나던 날, 창문 안에서 나의 딸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예쁜 인형을 던져주던 앞집의 할머니.

그들은 지금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큰 의미 없이 주고받았다 여겼던 그들과의 소소한 이야기와 몸짓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나폴리를 떠나던 날 딸아이에게 인형을 던져주던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실까.
뉴스에 소개된 나폴리의 요즘 모습

부활절을 맞이한 오늘, 지난해 바티칸의 광장에서 서로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그날을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불과 1년 후에 전 세계에 일어날 이 엄청난 사건을 짐작치도 못한 채 나누었던 그 짧은  인사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했는지를 나처럼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축복했던 1년 전의 그 경험이 그렇게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비록 지금은 광장에 모일 수도, 서로 포옹하고 악수하며 인사를 나눌 수도 없지만 각자의 나라와 공간에서 지금 이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에게 1년 전 그날을 기억하며 평화의 인사를 다시 전해 본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든 전쟁과 싸움 없이, 그리고 아픔 없이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당신이 지금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면 더없는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우리가 1년 전 같은 곳에서 경험했던 그 사랑이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 지금은 꽃을 피우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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