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먼 나라에서 잘 지내냐는 안부의 문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심각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를 이미 경험한 한국은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신속하고 지혜롭게 이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음을, 한국의 언론과 외신들을 통해 이곳 아일랜드에서도 확인하고 있다.
아일랜드에 있는 너희는 그래도 안전하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 비해 한국의 언론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아일랜드에 대해 대부분의 지인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여기는지 "괜찮지?"하고 묻곤 한다.
솔직히 정말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매일 저녁마다 오늘의 확진자가 몇 명이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뉴스가 뜨긴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고,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어디에 몇이나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며칠 전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아파트에 다녀간 확진자 한 명이 언제 몇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렀는지 세세한 내용이 메시지로 오는 바람에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불안에 떨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투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오싹하게 만드는 그러한 소식들이 꼭 필요할지, 아니면 적당히 모르는 것이 약일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정도의 세밀한 정보를 이곳 아일랜드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안전하지 않은 아일랜드 상황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탈리아나 스페인만큼은 아니어도 이곳의 상황 역시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월 26일인 어제까지의 확진자 수는 1,819명이고, 사망자는 19명, 그리고 매일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있다.
확진자 중 절반이 넘는 56%가 수도인 더블린에서 발견되었고, 23%가 의료 종사자이며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는 47명, 그리고 사망자 가운데 13명이 남성이고, 그들의 평균 연령은 79세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현실은 더 무섭다. 일단, 이곳의 검사자 수가 정확히 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닷새 전쯤 딸아이의 친구 엄마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는 아일랜드가 이미 만 명이 넘는 사람을 테스트했다며, 기대했던 것보다 잘하고 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2만 명 가까이 검사하고 있는 한국과 비교해볼 때 그다지 안심이 되는 숫자는 아니다.
게다가 검사 후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한국은 1만 명의 감염 여부를 6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는 키트가 생산되고 있지만) 오늘 아일랜드에서 발표한 확진자수는 이미 며칠 전에 감염된 이들의 숫자이고 그 사이 더 많은 이들에게 바이러스가 퍼졌고, 지금도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흘 전, 아일랜드의 총리는 여러 가지 중대한 사안을 발표했다.
우선 이번 주까지로 정해졌던 모든 학교의 휴교를 기약 없이 연장하기로 했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외출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더욱 강화했다. 슈퍼마켓과 약국, 그리고 음식을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안경점, 주유소, 세탁소, 은행, 우체국 등의 필수 소매점들을 제외한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아야 하고, 4명 이상의 모임이나 외출에는 제한이 있으며, 그나마도 식료품이나 약국 외의 다른 곳은 다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더블린과 코크, 그리고 골웨이와 같은 아일랜드의 큰 도시에서는 한국으로부터 도입한 드라이빙 스루 테스트 방법을 실시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일반 시민들의 경우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싶다면 나름의 절차가 필요하다. 일단은 직접 병원에 가기 전에 의료진이 있는 센터에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그 경우 코로나로 의심되는 발열이나 기침, 숨 가쁨과 같은 증상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은 동반되어야 하고, 확진자와 직접 접촉을 했거나 의료계 종사자, 장기요양 시설 거주자 등 코로나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될 확률이 높은 경우여야 한다.
엄마들의 소문에 의하면, 열이 나고 기침이 나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싶다고 의료센터에 연락하고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수만 명은 넘으며, 그들이 언제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집에서 기다리는 사이 병을 다 앓고 지나가게 될 거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리곤 한다. 게다가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도 실제로 얼마 안 되어서 이대로 숫자가 늘어나면 심각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슬기로운 격리 생활을 찾아서
학교가 문을 닫자, 학부모들이 모인 대화방에서는 열띤 대화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우선, 이탈리아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아이들이 서로의 집을 오고 가는 것을 철저히 막자는 데에 모두 동의하였다. 듣기로 이탈리아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딸, 손주까지 3대가 모여사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들이 늘어났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되어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어린이들이 서로의 집을 오고 간 것이 감염의 확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집 앞 잔디밭에 나가 축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곤 하는데, 산책 나온 다른 가족들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웃의 한 여자아이가 동네 친구에게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려 하자 소리치며 말리는 엄마도 보았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나름 적응하려 애를 쓰고 있다.
특히나 대화방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을 보면 아이리시들의 장점인 무한긍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둡고 무거운 뉴스들은 각자 알아서 접하고 있을 테니, 그것들을 굳이 대화방으로 끌고 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나누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학습 관련 사이트와 놀이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이 대부분이고 지금의 상황을 웃으며 이겨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웃긴 동영상과 문구들. 그리고 일선에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과 관련자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응원하자는 메시지들이다.
홈스쿨링의 시작, 원더우먼이 되어야 하는 엄마
기약 없이 늘어지는 긴 방학에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지만, 솔직히 엄마의 입장에서는 버거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 며칠간은 평소의 휴일처럼 두 아이를 자유롭게 내버려 뒀다. 사실, 아일랜드 초등생의 삶처럼 행복한 것도 없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숙제도 없고, 평일에도 운동이나 악기 레슨 외에 공부하러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그저 나가서 뛰어놀고 친구네 집에 놀러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던 녀석들은 집에 머물라고 하자 저마다 살길, 아니 놀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단순하게도 핸드폰과 TV였고,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빈둥대는 녀석들을 보니 걱정과 화가 슬슬 몰려왔다.
머리를 굴리다가 아이들이 자는 동안 쿠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집 몇 문제 풀면 디바이스 몇 분, 책 읽기 몇 시간, 운동, 집안일 돕기 등등의 업무를 수행하면 그에 주어진 디바이스 사용시간을 명시해 놓고 원하는 쿠폰을 제출할 수 있도록 벽보처럼 붙여놓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핸드폰과 리모컨을 압수하였다.
아직 어린 둘째는 흥미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과제 고르기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사춘기인 큰 녀석은 짜증을 내며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하지만 녀석의 반항도 얼마 못 가고 말았다. 방학이 아니라, 휴교이다 보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학교에서 집에서 진행해야 하는 과제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요일 오후가 되자 두 아이의 선생님이 다음 주 동안 아이들이 집에서 해야 할 각 과목의 수업 계획서와 자료, 문제 리스트 등의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평소처럼 매일 풀었던 수학 문제, 프로젝트 과제, 영어, 게일어, 음악, 과학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이 참여할 미술 대회의 주제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까지 그에 맞는 그림이나 만들기 등 창의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하여 사진을 보내면, 선생님은 그날의 우승자를 결정하여 연락을 취하고, 우승자는 내일 진행될 대회의 주제를 정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
태권도 사범님은 기본자세와 훈련 내용을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보내오고, 일주일에 이틀은 화상 수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악기 레슨 선생님도 그 주에 진행할 레슨 내용을 유튜브로 보내준다. 그럼 나는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그에게 다시 보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던 외국인 여성들을 위한 영어 클래스도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선생님은 이국 땅에 있는 우리들에게 유용할 정보들을 계속 보내주고, 시간을 정해서 자신과 일대일 화상통화 스케줄을 잡자고 한다.
반 엄마들은 그사이 새롭게 알게 된 e-book 사이트며 오디오북, 아트, 음악 사이트들을 계속 업데이트해주고, 그사이 아이들은 스카이프를 비롯한 단체 화상채팅 앱을 다운로드하여 반 아이들과 삼삼오오 혹은 단체로 화상 통화를 나누기도 한다.
인터넷 덕분에 편하고 인터넷 때문에 괴롭다
이 모두가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신기하고도 대단한 상황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이 모두 엄마인 나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내내 메일은 쏟아지고, 메신저도 쉴 틈이 없다. 그사이 아이들을 위해 자료를 프린트로 출력도 해줘야 하고, 둘째 아이는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내 전화나 노트북으로 하루에 열 번도 더 울리는 친구들과의 화상통화도 연결해줘야 한다.
때때로 유튜브로 영상도 보여주고, 문제 푼 것 채점도 하고 틀리면 설명도 해주고, 그림 그리면 사진 찍어서 교장에게 메일로도 보내고, 틈틈이 아이들과 나가서 운동도 한다. 그동안 했던 삼시 세 끼와 청소, 빨래, 설거지는 기본 옵션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며칠 지나자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아파왔다. 생각해보니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한 곳이었고, 선생님들은 대단한 존재가 분명했다.
“선생님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홈스쿨링을 더 하다가는 엄마들이 백신을 만들어 낼지도 몰라!
아이가 서넛인 엄마들은 성자와도 같아!
홈스쿨링은 잘 되어가니? 아이들은 싸우다가 정학을 맞고, 선생님인 부모는 술을 마시다가 해고되었어!”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부모들의 외침이 농담으로 터져 나왔다. 진짜 무서운 사실은 이런 긴 방학이 이제 겨우 2주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래도 이 난리 속에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예전처럼 집안에 콕 틀여 박혀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고 예전보다 더 외출을 삼가는 것뿐이다. 이런 격리(?)된 삶은 사실 우리 가족에게는 그다지 낯선 상황은 아니다. 처음 아일랜드에 와서 지내는 몇 달 동안은 실제로 차도 없고 언어도, 문화도 낯설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다.
조금씩 집 밖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동네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자 우리 아이들도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뛰어나가기 시작했지만, 주말이나 일주일 정도의 방학이 주어질 때도 보통 아일랜드가 그렇듯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면 우리 가족은 그냥 집안에 숨어 있곤 했다. 특별한 여행 계획이 있거나 마치 읍내 구경을 가듯 시내로 나갈 일이 아니라면 굳이 동네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한동안 숨어있듯 섬나라에 콕 박혀 지내면서 나는 종종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를 떠올리곤 했다. 시간이 흐른 후 감사하게도 조금씩 이곳의 사람들과 물리적, 사회적 거리를 좁혀가게 되면서 몇 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갔다.
마치 서로의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듯, 가고 싶고 발을 내딛고 싶던 다른 이들의 섬에 조심스레 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1년도 남지 않은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 처음의 그때처럼 사람들과 일부러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스스로를 철저히 격리하라는 구호가 들릴 때마다 나는 다시 이 시를 떠올린다. 단 두줄의 시구를 읊으면 읊을수록 진정으로 사람들의 온기와 숨결을 느끼고 싶고, 그들의 섬에 다시 가닿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서로를 안전하게 하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을 만큼의 거리란 어느 정도일까?
각자의 섬에서 모두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섬나라 아일랜드에서, 각자의 섬에 머물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매일 기도하듯 안부를 전해 본다.
다시 손을 잡고, 포옹을 나누고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그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