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성경 읽기 2022년 2월 14일
“하지만 여러분이 올바름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겁니다. 당신에게 고난을 준 이들의 협박에도 두려워 말고 그로 인해 당황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1베드 3:14
올바르게 살기 위해 고난도 이겨낸다는 것, 말로는 쉽습니다. 대형 교회를 세습하려는 목사 부자(父子)는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그 반대를 이겨내고 교회를 물려주는 게 올바르게 살기 위해 힘든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라 여길 겁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올바르게 잘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신이 힘을 더해 달라고 말입니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더불어 잘 사는 것이라 믿습니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때론 더불어 있는 누군가와 다투기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잘 사는 것은 다툼 없이 조용한 그런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잘 있기 위해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 인내하기도 하고 이겨내야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더불어 있을 때 더불어 잘 사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라면서 열심히 토론해도 결국 성직자가 결정한다면, 그것은 더불어 잘 사는 교회가 아닙니다. 적어도 성직자가 주인인 교회입니다. 성직자가 신의 대리인이기에 신의 교회를 위하여 성직자가 교회 주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토론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민주주의 사회, 협치의 사회, 왠지 꼰대의 모임 같은 교회를 다르게 봐주기를 바라는 어설픈 욕심으로 그냥 보여주기식 토론을 한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많죠. 이런저런 토론을 해도 결국은 성직자나 목회자가 결정해 버리는 그런 토론 말입니다. 말로는 모두가 더불어 주인이라지만 그것은 그냥 듣기 좋으라 하는 이야기이고 사실은 성직자와 목회자의 교회인 겁니다.
신의 뜻을 바로 알아듣는 성직자나 목회자가 주인이 되어야 올바르다면 그 교회의 성도들은 그냥 말 잘 듣는 존재가 되면 그만인가요? 신이란 존재를 가까이 모시는 종교인들이 주인이고 그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그런 종이 되면 되는 건가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제대로 더불어 있는 건 저마다의 아집에서 벗어나 다투고 화해하는 겁니다. 아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 위계(位階)의 고집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성직자든 성직자가 아니든 상관없이 더불어 지금 여기 신과 더불어 있을 벗으로 더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해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 겁니다. 그게 올바른 것이고, 그것이 정의로운 것입니다. 정의란 성직자와 목회자의 귀에만 신이 살짝 들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불어 있기 위해 아집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자기 위계에서 누리며 살기 참 좋은데, 그것에서 벗어나야 하니 말입니다. 모두 평등해져야 하니 말입니다. 그 평등이 누리는 높은 자리의 성직자와 목회자에겐 힘겨운 고행(苦行)의 여정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 고행이 바로 행복입니다.
평등하기 위해 성도들은 더 공부하세요. 힘들죠. 그것이 행복입니다. 성직자와 목회자는 더 내려놓으세요. 그것이 행복입니다. 더불어 행복한 것입니다. 어디 불교라고 다를까요? 아집에서 벗어나 더불어 잘 살아가는 정의로움이 우리를 제대로 잘 살게 한다는 것은 모든 종교와 모든 사회에 공통된 것이겠지요. 그리고 꼭 이루어야 하는 우리의 목표라 믿습니다.
힘들죠. 내려놓기 힘듭니다. 애쓰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게 행복입니다.
2022년 2월 14일
유대칠 씀
[2월 14일은 딸아이의 생각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는데... 눈뜨고 당당하게 행복한 아빠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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