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성경 읽기 2022년 3월 5일
오늘의 맘대로 묵상 2022년 3월 5일
לֹֽא־תְאֻנֶּ֣ה אֵלֶ֣יךָ רָעָ֑ה וְ֝נֶ֗גַע לֹא־יִקְרַ֥ב בְּאָהֳלֶֽךָ׃
“나쁜 게 다가오지 못하고, 재앙이 천막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합니다.”
시편 91편 10절
나쁜 것(רעה)이 다가오지 못하고 재앙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삶을 우린 기대합니다. 그것이 신의 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등장하는 구약 성서의 앞뒤 맥락에 상관없이 그냥 편하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좋은 신의 품에 안기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냥 신이 자신을 품을 안아주길 간절히 바라고만 있어야 할까요? 자기 자신이 누군가가 나쁨에 놓여 있지 않도록 애쓰고 자신이 그의 천막에 재앙이 다가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서로가 그렇게 더불어 서로의 아픔과 힘겨움에 더불어 있다면, 바로 그 더불어 있음의 자리가 신의 품은 아닐까요?
불교 신자든 이슬람 신자든 그들의 자리에 나쁜 게 들어오지 못하게 더불어 있어 주고 그들의 천막에 재앙이 다가오지 못하게 더불어 있어 주는 게 더불어 모두가 신의 품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나의 신은 나만 나쁜 것으로부터 지켜주고, 나의 천막만 재앙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나만의 신이어야 했고, 그래야만 믿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한히 좋은 신이라면 나만의 신이 될 순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한함이 ‘나’란 존재에 한정될 순 없으니 말입니다. 그 ‘신’은 나의 ‘신’이며, 너의 ‘신’이고,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신’이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신은 우리 모두 더불어 하나 되어 있을 때, 바로 그곳에 ‘우리와 더불어’ 혹은 우리의 ‘더불어 있음’으로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있음의 하느님은 저에게 그런 분입니다. 우리와 더불어 있으며, 우리의 더불어 있음 바로 그 자체인 그런 분 말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홀로 더 많은 복을 바라며 종교인에게 돈을 건넨다고 그에게 신은 더 많은 복을 주지 않습니다. 신은 복을 파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아무리 비싼 것을 교회나 성당에 바쳐도 아무리 대단한 값의 부적을 쓰고 굿을 해도 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철저한 ‘홀로 있음’의 욕심이 ‘더불어 있음’을 아프게 하는 독이 독입니다. 신을 아프게 하는 독입니다.
유대칠 씀
2022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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