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성경 읽기 2022년 4월 20일
오늘의 맘대로 묵상 2022년 4월 20일
ὅτι λύπη μοί ἐστιν μεγάλη καὶ ἀδιάλειπτος ὀδύνη τῇ καρδίᾳ μου·
“저는 너무 슬프고 나의 마음엔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는 겁니다.”
로마 사람에게 보낸 편지 9장 2절
고통(ὀδύνη(오뒤네))은 종종 ‘나’를 ‘나’로 만듭니다. 작은 씨앗이 작은 싹으로 한 걸음 나가기 위해 그 작은 씨앗은 자기 살을 스스로 가르고 싹을 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앗은 죽음 씨앗이 됩니다. 작은 새의 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겹게 오랜 시간 그 작은 생명이 스스로 딱딱한 껍질을 이겨낼 때 그 작은 새는 드디어 자기 생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고난의 길이 힘들어 그 아픔이 싫어 알에만 살겠다 하면 그 알은 죽은 알이 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철저하게 혼자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작은 씨가 작은 싹을 내는데 태양이 빛을 내어주고 비와 이슬이 물을 내어주고 땅의 흙은 온기와 양분을 내어줍니다. 그 모두가 더불어 할 때, 외롭지 않은 그 작은 씨는 싹이 되는 겁니다. 작은 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둥지에 지키며 알을 품은 부모 새의 애씀이 있고, 그들에게 기꺼이 둥지를 내어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작은 새끼 새가 알을 깨는 그 애씀도 이처럼 더불어 있음 가운데 가능합니다. 부모 새도 떠나고 나무가 둥지를 내어주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고난의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 더불어 있는 ‘뜻’의 순간을 경험합니다. 전태일은 홀로 잘 살기 위해 죽지 않았습니다. 말이 되지 않고 홀로 잘 살기 위해선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홀로 잘 살기 위해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내어놓음으로 이 땅 아프고 힘든 이들의 눈물과 분노를 불길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 소리친 겁니다. 더불어 있자고 말입니다. 그런 더불어 있음의 마음 없이 각자에게 너무 깊은 슬픔과 끊이지 않은 고통이 있다면, 그 외로운 아픔은 죽음의 자리가 될 겁니다. 그러나 더불어 있음의 마음으로 서로의 아픔을 우리 가운데 남의 아픔이 아닌 나의 아픔으로 품는다면, 그 깊은 아픔은 새로운 생명을 향한 또 다른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치 작은 씨가 더불어 있음 가운데 힘겹게 싹이 되듯, 작은 알이 더불어 있음 가운데 힘겹게 하늘을 나는 새가 되듯이 말입니다.
아프고 힘든 이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와 고난의 책임을 따지며 추궁하는 조롱이나 질책이 아니라, 더불어 있어 안아주는 겁니다. 그의 아픔을 함부로 단순화하여 조언하기보다 더불어 있어 안아주는 겁니다. 더불어 아파해 주는 겁니다. 홀로 절망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그것이 씨와 알을 죽지 않게 하는 것이라 믿어 봅니다. 어쩌면 그 더불어 있음의 고난 속에 그는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생명, 새로운 나를 향한 진화를 시작하게 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렇게 부활, 죽은 삶이 살고 사는 그 부활의 삶이 이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아파하며 진화하는 동안 말입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