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야고보서 읽기 1
야고보가 쓴 편지
유지승 옮기고 풀이함
1장
1.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支派) 여러분께 이렇게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2. 내 형제 여러분! 온갖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오히려 그걸 큰 기쁨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如是我聞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삶 속 고난의 시간은 내가 진짜 내가 되는 시간입니다. 역사 속 고난의 시간이 우리가 진짜 우리가 되는 시간이듯이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까. 그 시간을 걸치면서 우린 우리 아닌 이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 자기 혼자 홀로 좋기 위해 기꺼이 우리를 버리고 배신하는 권력자와 종교인과 지식인 등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라고 믿었지만 사실 우리가 아닌 우리를 마주한 것입니다. 그 가짜 우리를 마주하고서 우린 진짜 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전쟁과 독재의 시간을 살아가며, 그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며, 우린 우리 아닌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우린 그 고난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고난의 시간, 이렇게 생각하면 고난의 시간은 절망(絶望)의 시간이 아니라, 희망(希望)의 시간입니다. 더 단단한 우리로 더불어 있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 말입니다.
고난의 시간, 어떤 종교는 가해자의 편이 되어 보다 더 안전하게 자신의 신앙을 포교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이 땅 수많은 민중이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도 그들은 가해자를 칭송하여 그의 옆에 섭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민중의 눈물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며 이 땅 이 힘겨움 앞에 민중이 어찌할까 청하면 죽어서 갈 천국만을 이야기합니다. 가해자의 편에 서 죽음을 위한 종교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런 종교 역시 결국은 홀로 좋으려는 종교입니다. 사리사욕의 종교입니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자기 내어줌으로 그 아프고 힘겨운 민중의 눈물에 다가가 더불어 있어야겠지요. 그렇게 죽어서 갈 천국을 이야기하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살아서 만들어갈 이 땅 위의 천국을 위한 산 사람에 의한 산 사람을 위한 산 종교가 되어야겠지요.
고난의 시간, 그 시간은 홀로 있음의 유혹, 홀로 좋음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때 그 고난의 시간 동안 우린 정말 제대로 더불어 있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유지승 씀
2022년 9월 29일
유지승은 고전 공부 하는 사람입니다. 대구 다사 서재에서 철학과 고전을 위한 작은 학교를 운영중이며, 누군가에겐 일용직 노동자이고 누군가에겐 고전어 선생이며, 누군가에겐 철학 선생인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분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