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있음의 신학과 철학
‘구원(救援)’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사용하는 ‘구원(救援)’이란 말은 헬라어 ‘Σωτηρία’, 즉 ‘소테리아’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이 말은 신약 성서에만 등장하는 말이 아니다. 그 이전 이미 플라톤의 저서 등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유지(維持)’ 혹은 ‘보전(保全)’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속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지켜야 할 것은 ‘보전’하고 ‘유지’하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
‘구원’이란 무엇일까? 구원이란 말을 사용하는 종교들은 저마다의 답을 가지고 있을 거다. 누군가는 우리 사람의 힘이 너무 약(弱)할 뿐 아니라, 악(惡)하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신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할 거다. 즉 구원은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일 뿐이라 할 거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노력 없이 그저 신의 도움만을 기다릴 순 없다면, 나의 노력과 신의 도움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할 거다. 또 어떤 이는 아예 다른 길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철저한 자력(自力)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헬라어 ‘소테리아’가 ‘구원’으로도 그리고 ‘유지’와 ‘보존’으로도 번역된다면, ‘구원’은 어쩌면 ‘유지’이고 ‘보존’이다. 무엇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걸까? 그리고 그 유지와 보존은 누구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고대 사람들은 왕이 자신을 죽지 않게 그리고 비참해지지 않게 유비하게 하는 이로 여겼다. 그러니 왕을 헬라어로 ‘σωτήρ’ 즉 ‘소테르’로 불렀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Πτολεμαῖος Σωτήρ, 전 367~전 283)를 보라. 그리고 메난드로스 1세 소테르(Μένανδρος Αʹ ὁ Σωτήρ, 재위 기간: 전 165?/155년?~전 130) 등을 보라. 이외에도 여러 ‘소테르’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선 예수가 바로 소테르다.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는 존재, 우리를 보존해 주는 존재, 바로 ‘구세주(救世主)’다. 왕국의 시대, 민중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던 시대, 사람들은 왕이라 부르는 이를 주로 ‘소테르’라 불렀다. 그의 힘으로 구원이 될 것이고, 자신의 생명과 가진 게 보존될 것이라 믿었다. 자신은 그저 그를 믿고 그를 따를 것뿐이라 여겼다.
이제 민중이 한 나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다. ‘소테르’는 민중 자신이 되어야 한다. 바로 나의 삶에서 나란 존재가 ‘소테르’란 말이다. 나는 무엇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그 애씀의 삶이 곧 구원의 행위다. 구원의 현실이며, 구원이 드러남이다.
신화의 시대, 헬라의 신화 속 ‘소테리아’는 위험으로부터 구해줌으로 우리를 보존케 하는 여신이었다. 힘겨운 우주 가운데 우리는 소테리아 여신에게 우리 자신의 보존과 구원을 빌었다. 나쁨에 빠지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보존케 해달라고 말이다. 우리 자신을 말이다. 그 시대 이후 우리는 왕에게 그것을 의지했고 지금 우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소테르’가 되어야 한다.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서로에게 소테르가 되어야 한다. 그때 나도 나에게 그리고 너도 나에게 또 너에게 나도 너에게 너도 소테르가 되는 세상이 될 거다. 이런 애씀이 가득하다면 바로 그곳이 구원이 이루어진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유대칠 씀
2022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