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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y 24. 2023

깨우친 자의 모습

금강경(金剛經) 읽기 1

금강경(金剛經읽기 1     


깨우친 자의 모습 


1 법회가 열린 인연

"저는 이처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께선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 가운데 천이백오십인의 큰 수행자들과 더불어 계시었습니다.

그날 세존께서는 식사 때가 되자 가사를 입으시고 바루를 가지시고 사위성에 가셔서 가시와 차례로 밥을 비시었다. 그리고 원래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깨우친 이는 깨우치고 그저 홀로 머물지 않습니다. 깨우친다는 건, 어떤 답으로 자신을 가득히 채우지 않는 겁니다. 어떤 하나의 답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그 답 이외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생각, 그 답만이 유일한 답으로 보입니다. 바로 ‘아집(我執)’입니다. 아집, 나의 답만이 영원한 오직 하나의 정답이라는 그 집착(執着)은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괴롭게 합니다. ‘고(苦)’, 즉 괴로움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영원한 삶만이 가장 좋은 삶이라 고집부린다면, 그 고집으로 인해 죽어가는 지금 이곳의 삶은 나쁜 삶입니다. 그러니 죽어가지 않으려 애씁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이니 지금의 자신, 즉 자연의 자신을 넘어서는 초자연의 무엇에게 자기 존재를 의지합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 말입니다. 사실 영원한 건 하나도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모든 건 변화합니다. 있다가 사라집니다. 그건 나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겁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려고 합니다. 자연을 벗어나려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초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초자연으로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초자연으로 나아갈 길을 안다는 종교인에게 자기 존재를 맡깁니다. 그의 명령과 지도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도 괴롭습니다. 그래도 초자연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그러니 신의 말이 담긴 책을 부여잡고 돌아보고 돌아봅니다. 항상 불안한 자신, 무엇인가 신의 뜻에 차지 않는 자신을 죄인이라며 자책합니다. 그냥 죽어가는 것이 삶이고,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한 모습이라 생각하면 초자연으로 나아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할 것도 없고 불안해할 것도 없습니다. 삶은 죽음과 다른 것이 아니라, 삶에 죽음은 당연한 하나의 부분입니다. 이것이 자연입니다. 살아간다는 말은 사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담담히 수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고 영원의 삶, 초자연의 삶으로 나아가려 하면, 불안합니다. 영원한 삶, 그것만이 구원이란 고집, 그 답만이 정답이라 고집으로 살아간다면, 그 하나의 고집에 사로잡혀 불안합니다. 그 불안을 이기기 위해, 신의 눈에 들기 위해, 애씁니다. 전도도 합니다.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말입니다. 봉사도 합니다. 역시나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말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선행은 신을 기쁘게 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수단입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면, 제대로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많은 이들을 만나도 사람이 아니라, 자기 구원을 위한 수단이니 말입니다. 종교인은 자신의 명령과 자신의 지시로 사람들이 천국에 갈 것이니, 자신은 다른 이와 달리 조금 더 신에게 가까운 존재이니, 자신을 다른 이와 구분합니다. 가난하게 살자 설교하면서 막상 자신은 화려한 곳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하게 삽니다. 모두가 평등하다 하면서 막상 자신은 높임 받으려 삽니다. 

정말 더 많이 더 깊이 깨우친 이들은 이러지 않습니다. 말만 가난을 말하지만, 막상 높임 받고 살아가는 이들은 여전히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입니다. 

‘부처’, 즉 ‘붓다’는 ‘깨우친 이’ 혹은 ‘눈을 뜬 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을 깨우치고 본 이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가 어떻게 높임을 받고 남과 다른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며 위세를 과시하려 하겠습니까. 부처는 식사 때가 되자,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성으로 들어가 스스로 음식을 얻어 스스로 먹습니다. 가만히 앉아 주는 것을 먹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중 받지 않습니다.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을 때, 이미 높임 받는 이, 시중 받는 삶, 그것이 당연하다며 살아가는 아집의 삶은 버렸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 할 일, 즉 자신이 본 것, 그 깨우친 걸 나누려 앉습니다. 이제 부처 그리고 그와 더불어 있는 이들 사이의 대화를 들어봐야겠습니다.


2023년 5월 24일

유대칠 한문 옮기고 우리말 풀이 씀



해인사 2022년 유대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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