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주간 12월 5일
“그리고 남은 빵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 가득 찼습니다.”
마르코 6장 43절
많이 가진 이는 자신이 가진 것에 가려 가난한 이의 아픔을 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구호를 외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들도 가진 게 많아지면, 결국 그 가진 것에 가려 가난하고 힘겨운 이의 아픔을 보지 못합니다. 처음엔 보이지 않아 보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보지 않습니다. 볼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형식적인 행동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하느님을 향한 자신들의 구호, 그 글귀에 빠져, 하늘만 바라보며 이 땅의 아픔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조차 하느님의 뜻이라 자기 위로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교회 조직은 부유하지만, 그 부유함에 비해 그 조직이 있는 곳에서 그 교회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겐 그리 착하단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럴듯한 언어로 자신을 미화하며 살아가는 이들로 보일 뿐입니다.
하늘을 보고 살라는 말은 이 땅을 버리란 말이 아닙니다. 이 땅의 이 수많은 부조리가 나 혼자 도저히 어쩔 수 없어도, 그 어쩔 수 없는 힘겨움, 그 불가능을 향하여 애쓰며 살아가는 삶, 바로 그것이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이의 삶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뜻을 이 땅에 일구며 살아가는 이의 삶입니다. 저마다의 이기심으로 가득한 부조리의 세상, ‘홀로 있음’으로 가득한 차가운 세상, 이런 세상에 도저히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더불어 있으려 하고, 그래도 이타적으로 있으려는 것, 바로 그것이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 바로 신앙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나만이 홀로 가지는 게 아니라, 더불어 가질 때, 그 더불어 있음은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집에 먹을 게 있으니 정말 배고픈 이에게 나의 몫도 전해 주세요.” 정말 가난하고 힘든 이를 위해 이렇게 서로 미루고 미루면, 그 자리 더불어 있는 우리 모두 참으로 행복하게 웃으며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게 기적이죠. 이게 정말 행복한 기적입니다. 초자연의 그 무엇 없이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고 살 수 있는 그런 기적입니다.
나의 삶은 기꺼이 더불어 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대림주간 나를 돌아봅니다.
예수를 기다리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