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초월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대림주간 2023 12 21

by 유대칠 자까

“하느님은 어디에도 아니 계십니다. 하느님의 지극히 작음이 온 피조물에 가득 차 계시며, 그의 가장 큼은 어디에도 아니 있습니다.”

Gott ist nirgends. Gottes Geringstes, dessen ist alle Kreatur voll, und sein Grösstes ist nirgends.

에크하르트의 글


‘초월(超越)’은 벗어나 있음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 모든 것의 밖에 있다는 말입니다. 초월의 자리에 초월로 있단 말은 우리에게 벗어나 있단 말입니다. 만날 수 없단 말입니다. 당연하죠. 우리의 밖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남인 존재,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존재, 정말 그런 존재와 우리가 더불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초월에 희망을 두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가장 반가운 희망은 나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에게 자기 욕심 없이 다가와 내 눈물과 내 웃음과 더불어 있어 주는 내 앞의 너입니다.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에서 그 존재의 뜻은 깊어지겠지요.


예수는 초월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을 거대한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와 더불어 우리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거대한 성전이나 궁전이 아닌 희생과 고난의 자리, 가축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온 그는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자와 더불어 우리가 되어 우리로 살았습니다. 남이 아닌 우리가 된 겁니다.


하느님의 자리는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이들, 아픔이 일상인 이들, 바로 그런 이들의 눈물이 하느님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우리를 이루며 사는 그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있음의 자리, 바로 그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들의 더불어 있음의 자리가 하느님의 자리이고, 바로 그 더불어 있음이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아무것도 나에게 욕심 없이 찾아와 기꺼이 내 아픔 눈물의 옆에 더불어 우리가 된다는 것, 그것은 기적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런 더불어 있음의 자리에 있었고, 그 자신이 더불어 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우리에게 그런 삶을 권합니다.


우리의 욕심, 우리의 아집, 그런 것으로 가득한 기도를 들어주는 초자연의 실력자가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와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하는 하느님은 더불어 있음의 하느님,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에 녹아들어 그들과 더불어 있는 하느님이라 저는 믿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어주는 하느님은 내 욕심을 긍정하게 합니다. 결국 거룩함의 언어로 부끄러움 없이 욕심을 이야기하게 합니다. 이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이란 우리 각자의 삶이 우리 각자의 크고 작은 아집에서 벗어나 참으로 우리가 되어가는 여정, 더불어 살아감의 여정, 그렇게 우리 각자의 삶이 하느님이 되는 그런 여정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이 땅이 더불어 있음의 자리가 되게 하는 것, 그렇게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 믿습니다.


초월의 하느님보다 옆에서 나를 보며 웃어주는 너에게서 더 뜻깊은 하느님을 만나는 요즘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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