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테오 6장 10절
Radix enim omnium malorum est cupiditas, quam quidam appetentes erraverunt a fide et inseruerunt se doloribus multis.
탐욕은 모든 나쁨의 뿌리이며, 어떤 이는 그것을 따르다 신앙에서 벗어났고 많은 아픔을 자초하였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6장 10절)
탐욕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탐욕이 무엇이죠? 간단히 말하면 욕심입니다. 욕심은 더 많이 홀로 가지려는 것입니다. 홀로 더 많이 가지며 홀로 더 두드러지니 말입니다. 홀로 더 두드러지면 어깨에 힘들어가고 왠지 행복한 사람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더 많이 홀로 가지려 합니다. 더불어 가지면 홀로 앞서지 못해 재미가 없습니다. 홀로 앞서서 뒤에 오는 이들을 보는 재미가 없습니다. 뒤가 아니라 옆에 있으니 재미가 없습니다. 뒤에 있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무엇인가 더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은데 옆에 있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홀로 더 앞서 있고 홀로 더 높이 있다면 남을 조금 함부로 다루어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더 높고 더 앞서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홀로 있음은 외로움입니다. 막상 손잡는 법을 모릅니다. 알아도 잡을 수 없습니다. 손은 옆 사람과 잡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안아주는 법도 모릅니다. 안기지도 못합니다. 응원하지도 못하고 응원받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그냥 홀로입니다. 홀로 앞서 있으니 혹시나 도움을 받을까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가 자신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을 압니다. 자신도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니 말입니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은 철저하게 계산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욕심으로 움직이는 세상, 그 세상은 모두가 홀로 있습니다.
그 홀로 있음은 참으로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것은 자신의 웃음을 더불어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더불어 있을 때 다가옵니다. 나의 웃음이 그냥 너의 웃음이고 너의 성공이라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살아가는 이는 더불어 살아감을 모릅니다. 옆에 더불어 있어도 외롭습니다. 더불어 사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홀로 살아가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래서 자기 성공과 자기 웃음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홀로 웃어도 행복인지 모릅니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너의 더불어 웃음이 나의 행복을 진짜 행복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더불어 있음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산 더불어 있음은 그저 곁에 있음이지 더불어 있음이 아닙니다. 더불어 있음은 자기 내어줌으로 서로 다른 이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살아가는 이들, 경쟁과 비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멀고 먼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살아감이 그들에겐 없는 것이지요.
욕심, 쉽지 않지만 조금 덜해 봅시다. 그만큼 어쩌면 조금 더 편하게 행복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더불어 살아봅시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진 것을 버리지 말고 더불어 나누어 삽시다.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도 이미 더불어 있을 것이라 믿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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