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2 (대림 특강)
Dicit ei Iesus:"Tanto tempore vobiscum sum, et non cognovisti me, Philippe? Qui vidit me, vidit Patrem. Quomodo tu dicis: “Ostende nobis Patrem"?
예수가 그에게 말했다. 필립보여, 나는 당신과 더불어 이리 오랜 시간을 있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까? 나를 본 이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 말하십니까?
(요한복음서 14장 9절)
보여주세요. 정말 당신이신가요? 저의 주변에 저와 더불어 있는 당신이신가요? 아닙니다.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저의 주변에 이렇게 다가와 있지 않은 저 초월된 곳, 저 높은 곳, 그곳으로 나를 높여줄 바로 그분을 보여주세요.
그런데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길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로 당부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여기에 희망을 일구라 우리에게 청하고 바로 그것을 기도하라 하신 분이십니다. 벗어나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이곳에서 애쓰지 않고 저곳으로 갈 생각 마시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애쓰세요. 바로 여기, 지금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 이미 우리와 더불어 있는 예수는 너무나 많을지 모릅니다. 멀리 저 하늘에서 찾지 마시고 지금 바로 옆 우리와 더불어 있는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봅시다.
우리 됨 가운데 나를 느껴봅시다. 우리와 더불어 있으심(nobiscum)이란 뜻의 이름, 엠마누엘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분을 우리 밖에서 찾으려면 도대체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외롭게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직도 경쟁을 외치면서 더 높고 더 멀리를 세상에서, 그런 마음에서, 하느님은 저 멀리 일등으로 달리시는 분이라 그곳에서 당신을 일등으로 댕겨주실 분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와 더불어 있음으로 오신 분의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 가운데 아픈 이들과 아파하며 부조리에 다투며 살아가는 힘겨운 길입니다. 누군가는 펜으로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기도로 누군가는 거리에 나가서 흩어지고 분열을 강조하는 이 현실에서 열심히 다투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성직자와 목회자에게 예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더불어 있음으로 오신 분이 홀로 잘 나겠다는 이의 편을 들지 않을 것입니다.
21세기 환경과 더불어, 가난과 더불어, 홀로 아파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나아가야 하는 시대, 신앙은 그 시대의 조건 속에서 치열하게 아파하며 기도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미 우리와 더불어 있으신 하느님을 마주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야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희망의 불길이 되어 타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손길이라 생각해 봅니다.
이미 오랜 시간 우리와 더불어 있음에도 그저 홀로 더 잘나고 싶은 생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생각으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홀로 됨의 마음을 접어두면 자연히 더불어 있기 위해 살 것이고 그때 그분은 자연히 우리 옆에 웃으시며 다가와 있으실 것이라 믿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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