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1 (대림 특강)
Ecce, virgo in utero habebit et pariet filium, et vocabunt nomen eius Emmanuel, quod est interpretatum Nobiscum Deus.
보십시오. 태중에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으니, 그의 이름을 엠마누엘이라 부르세요.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있으신다는 뜻입니다.
(마태오복음 1장 23절)
예수는 우리와 더불어 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 그분의 이름이 우리와 더불어 있음이신 그런 분이십니다. 그렇게 그분은 철저하게 우리와 더불어 있으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곧 그분의 존재이신 그런 분이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분의 기적을 보면서 막상 그분의 본질, 그분이 이 땅에 오시며 가지신 그 이름의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대림을 지내고 성탄을 보낸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더불어 있임이 이름이신 분이십니다. 그냥 입으로 '엠마누엘'이라 부르며 막상 그 뜻을 머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 예수를 기억하는 것, 그분 오심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녹아들려 그분의 그 아픔과 기쁨이 남의 아픔과 기쁨이 아닌 바로 우리의 아픔이고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와 더불어 있음으로 오신 분의 그 뜻과 같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하는 작은 예수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와 더불어 있다는 것은 그저 그분의 말씀을 여러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기적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기적을 가진 절대적 권능의 소유자라는 감탄이 아니라, 아프고 힘든 이들의 그 홀로 있음의 아픔을 안아준 더불어 있음의 모습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가 예수가 되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엠마누엘 예수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살아야 하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사랑',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예수의 이름은 우리와 더불어 있음, 즉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목숨마저 아깝지 않다 내어 놓은 그 사랑입니다. 계산하지 않은 내어줌입니다. 내가 이것을 내어주니 너는 무엇을 줄 것인가 계산을 하며 예수는 십자가에 오르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해서, 그저 사랑해서, 그분의 이름처럼 더불어 있어야 하기에 그것이 그분의 길이기에 그리 하신 것입니다. 그 엠마누엘 예수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다시 돌아봅니다. 우리는 더불어 있는가요?
교회든 성당이든 오래 다닌 이들이 무리를 만들어 그 작은 모임에서도 기득권으로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내가 이 교회와 성당에 내어 놓은 돈이 얼마인데 계산하고 내가 내어 놓은 시간이 얼마인데 목소리를 높입니다. 더불어 있음의 봉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계산을 하며 준 만큼 받을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지요. 오히려 추잡한 욕심에 예수의 이름을 걸고 있으니 더욱더 추잡해 보입니다.
예수는 정말 계산하지 않고 다가온 분이십니다. 한 손에 계산기를 들고 다가오신 분이 아니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픈 이들의 벗으로 다가오신 그런 분, 우주 모두와 아픈 모두와 더불어 있으신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기억하고 또 그렇게 삽시다. 지금 우린 작은 예수의 삶을 살려 노력하고 있을까요. 더불어 있으려 노력하고 있을까요. 오늘도 저를 돌아보고 돌아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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