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 3 (대림 특강)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뒤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
(Et dixit eis Iesus: "Venite post me, et faciam vos fieri piscatores hominum".)
(마르코 복음 1장 17절)
사람 낚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여기에서 낚는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끌어낸다는 말이다. 어디에서 끌어내는 것일까? 예수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경쟁이다.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고 조금 더 많이 누리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배신을 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한다. 언젠가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이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해 거짓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종종 거짓을 말한다. 그러나 전태일의 거짓은 그의 이기심에서 일어나는 거짓이 아니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한 거짓이었다. 그 거짓으로 누군가 아파하고 누군가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거짓이었다. 읽다 보면 어머니도 그 거짓을 아셨지만 그냥 넘어가는 듯하다. 그 역시 같은 마음이다. 어머니 역시 그것을 거짓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걱정을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으로 읽었다. 이런 거짓은 흩어지게 하는 거짓이 아니라 우리 됨을 위한 서로의 배려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거짓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종종 더 사악한 거짓으로 움직여진다. 너희를 위하여 희생하였다면서 스스로의 소유과 권력을 위하여 미친 듯이 살아가는 권력자들의 거짓이 그러한 거짓이다. 인혁당 사건이란 거짓 사건으로 아까운 목숨을 죽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결국은 개인과 어느 집단의 이기심이 만든 비극이었다. 남보다 강해지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남보다 더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만든 거짓은 분열을 만들고 흩어지게 만든다. 강자가 되고 싶고 나 아닌 모두를 지배하고 싶고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면 없애버리며 그렇게 항상 강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 욕심은 흩어지게 만든다. 바로 그런 현실에서 사람들을 건져 올리는 것이 정말 복음이다.
사도들은 예수를 따라 부자가 되려 하지 않았고 이 세상 권력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삶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목숨을 빼앗길 위험을 이겨내거나 결국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와 더불어 있었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더불어 있음의 따스함이 처음 예수를 향한 이들의 까닭이었을 수 있다. 가진 자의 눈치를 보면서 서로 경쟁하면서 더 많이 더 누리며 살아가려는 세상에서, 그 저마다 홀로 있음의 세상에서 더불어 있음의 따스함을 느껴봄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예수의 뒤를 따라 더불어 삶의 길을 가는 것인지 돌아본다. 어쩌면 예수께서는 지금 나에게도 자신을 따르라 할지 모른다. 이벤 좀 나를 따르라 하실지 모르겠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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