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아시나요?

요한 복음서 읽기 2020 12 31

by 유대칠 자까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요한복음서 17장 17절)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아듣기 힘듭니다. 어찌 보면 이리 말씀하시고 어찌 보면 또 저렇게 말씀하십니다. 때론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반대 이야기를 그냥 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는데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듣기 너무 어렵습니다.

사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단언하기 쉽지 않습니다. 철학자마다 서로 다릅니다. 그 서로 다름의 역사가 철학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플라톤이 고민한 것을 그대로 지금 이 땅에 실현할 수 없습니다. 플라톤에겐 참으로 진실된 고민의 결과이고 어쩌면 그것이 참된 해법이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저 과거의 이상일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자도 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지금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해 이런저런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지만 그들 과거의 사람들이 이룬 구체적인 답은 지금 우리가 원하는 그리고 살려하는 구체적인 답과는 다릅니다. 그들의 진리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진리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 그들의 진리를 진리라고 지금을 살면 몸은 21세기인데 맘은 기원전 4-5세기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것이 바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철학은 진리를 만들고 스스로 그 진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시 움직였습니다. 때론 자신을 오답화하면서 새로운 정답을 찾았고 때론 자신의 답은 수정하며 정당을 다시금 찾아 나셨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구체적 철학자들은 저마다 철학의 진리를 구했다 생각해도 막상 철학 그 자체, 그 보편의 지혜는 어느 진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역동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누군가의 답이 오직 하나의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그에게 정답이라지만 그 정답은 누군가에게 오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많은 수정이 필요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정답이 아닌 그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그 여럿이 쉼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는 그 각자의 하느님의 말씀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안주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안주하는 순간 하느님의 말씀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한정된 관념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관념 밖에 무한으로 있는 하느님을 향하여 유한한 자신의 생각의 틀을 쉼 없이 무너뜨려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느님은 우리 사람에겐 알 수 없는 분이시고, 우리의 아집으로 하느님은 감추어 계신 분이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쉼 없이 우리의 아집을 돌아보고 돌아보며 알 수 없는 하느님을 향하여 아는 조금의 하느님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신앙함 일지 모릅니다.

철학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답에 안주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것을 무너뜨리고 수정하며 진리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철학함은 누군가의 철학은 요약정리 암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추종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모두가 철학함의 전문가가 될 수 없기에 전문가인 철학자의 철학함, 그 결실을 아는 것은 경우에 따라 일상 속 그 철학의 결실을 적용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많은 이들에게 쓸모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철학의 끝은 아닙니다. 철학은 쉼 없이 돌아보고 부서지며 자기 스스로의 답을 오답으로 의심하며 새로움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향한 우리의 여정도 그러할 것입니다. 안주하지 않고 알 수 없는 그 말씀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 나의 아집 속에서 안주하며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이라 단언하지 않고 항상 돌아보고 돌아보며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향하여 힘겨운 걸음을 향하는 것,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의 말씀은 어렵기만 합니다.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모조리 들어올 순 없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 고집하는 그 고집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아집과 우리 생각 그리고 우리 모든 것을 넘어 또 넘어 있으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나의 답에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나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향한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31


[인터넷 부크크 서점에서 유대칠을 검색하시면 제가 번역한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한번 참조해주셔도 고맙습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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