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기

나는 무엇으로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지승의 도덕경 읽기 2021년 12월 31일

by 유대칠 자까

1장

길이라 부를 수 있는 길은 영원한 길이 아닙니다.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만이 영원한 이름인 것도 아닙니다. 이름 없는 것이 모든 것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이 모든 것의 어미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 없이 살아가면 그 오묘함을 보게 될 것이고, 항상 욕심을 품고 살아가면, 그 가장자리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은 같습니다. 사람의 앎으로 드러나 이름만 다를 뿐입니다. 그 같은 것을 두고 현묘하다 합니다. 현묘하고 현묘합니다. 이는 모든 현묘함이 나오는 문입니다.

一.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儌,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일.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차양자동, 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풀이: 저도 그렇지만 흔히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그 생각이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 남에 의하여 교육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하여간 자신의 생각 속 답만을 답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니 서로 다투게 됩니다. 서로 자기 답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자기 생각 속에 그것만 있어서 그것만을 답이라 생각할 뿐 사실 자기 생각 속에 있지 않은 또 다른 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얼마든지 서로 다른 답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처음 불상을 만든 이가 생각한 부처님은 지금 우리와 달랐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히 말이죠. 우선 그 부처님은 인도 인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곳의 옷을 입고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히 말입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간 불상은 다릅니다. 유교의 국가이니 아무래도 인도 인근 사람과 다른 유교의 옷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천 하나를 걸친 듯한 부처님의 옷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면 또 달라지겠지요. 어느 스님이 아프리카에 가서 불상을 부탁하니 흑인 부처님을 불상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담긴 지혜도 그와 같겠지요.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서로 같은 것일 수 있고 서로 너무 같지만 서로 너무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의 길로 모두 이해할 수 없고 하나의 이름으로 담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길만을 강조하고 하나의 이름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슬프지요. 사실 더 크고 더 광대한데 그 작은 길만을 걸으라 하고 그 작은 이름으로 구속되어 살라 하니 말입니다.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어머니이고 누구의 딸 등등의 이름이 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 이름이 그의 이름이지만 그의 온전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의 온전한 이름은 그 작은 몇 글자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원래 그 작은 이름으로 그리고 그 작은 길로 담아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름 없이 있는 바로 그 무엇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려 하면 그 행위에 따라 이름이 나옵니다. 비록 그 이름으로 온전히 담을 수 없지만 우리가 무엇을 향하여 움직이면 바로 그 움직임에 따라 이름이 생깁니다. 없이 있던 것이 무엇이 되려 하면 바로 무엇이란 이름이 생겨나듯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온전한 이름이 아닙니다. 항상 그 이름밖에 더 크게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욕심을 내어 무엇이 되려 하면 무엇이란 이름 속에 구속되고 아주 작은 이름이란 창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 세상은 그 이름이란 창의 밖에 있죠. 참 신비스럽습니다. 우린 이름밖에 있지만 이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린 이름 밖에서 제대로 우리 자신이지만 우린 이름 안에서 그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린 결코 그 작은 이름으로 구속될 수 없는 존재란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름 속에서 나를 드러내고 그 이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이름과 그 길에 담을 수 없는 신성한 그 무엇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2021년 12월 31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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