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기

어디도 무엇도 고집하지 말자.

유지승의 도덕경 읽기 2022년 1월 3일

by 유대칠 자까

2장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는 것은 사실 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선한 것을 선하다 하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있고 없고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여 생기며, 어렵고 쉬운 것도 서로가 대립하여 생기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 비교하여 가능하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아래와 위가 같지 않기에 가능합니다. 소리도 여러 소리가 어울려야 조화를 이루며, 앞과 뒤가 서로 따르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있는 그대로를 두어 어떤 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일을 이루고 말없이 가르침을 나누어 줍니다. 자연 만물이 어찌 운행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연은 만물을 낳으면서 그것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연은 만물을 안아 보살피지만 그 베푼 것에 대해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자연은 결실을 내고도 그 공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의 무위와 같이 성인 역시 어디에 머물지 않기에 무엇인가를 거두어 드리려 할 것도 없습니다.


二.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이.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부시, 공성이불거, 유불거야, 시이불거


풀이: ‘있음’과 ‘없음’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까닭’입니다. ‘없음’이 없는 곳에 ‘있음’도 없고, ‘있음’이 없는 곳에 ‘없음’도 없습니다. 논리상 너무나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없음’이 없는 곳에 ‘있음’이 어찌 있을 것이며, ‘있음’이 없는 곳에 ‘없음’은 어찌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없음’은 ‘있음’의 덕으로 있고 ‘있음’은 ‘없음’의 덕으로 있다고 하겠습니다.

‘있음’만을 생각하고 따진다면, ‘없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면 우주의 큰 흐름에서 그만 이탈하고 맙니다. 우주의 이치에서 벗어나 버리고 만단 말입니다. 왜냐구요. 우주는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의존하며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며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조금 더 자세히 봅시다. 자연의 모든 ‘있음’은 ‘없음’으로 있습니다. 자연은 어떤 욕심도 생각도 품지 않고 그저 흐릅니다. 자연이 여기 있구나 말할 수 없습니다. 자연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흐르는 땀도 자연이고 저기 자 작은 잡초의 질긴 생명력도 자연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내 땀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저 잡초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은 나의 덕으로 있는 내 것이라 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비워져 있습니다. 그 비워짐, 즉 그 없음으로 모든 자연 만물은 여기저기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자연이 “나는 여기에 머물겠다”라고 한다면, 자연 만물을 무너집니다. 다른 모든 곳의 자연이 사라지면 생명도 존재도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모든 것이 그의 덕으로 있지만 그리고 그 덕의 결실이지만 어느 것도 강제하지 않고 어느 것도 나의 것이라 고집하지 않고 어디에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비워져 어디에나 있는 것이 자연입니다. 어디에도 고집하지 않으니 어디에나 언제나 있지요.

성인이란 이러한 자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며 모두를 움직입니다. 스스로 굳이 말속에 온전히 모두 담아내겠다는 생각도 욕심도 없이 자연의 이치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스스로 자연과 하나 되어 애써 무엇으로 고정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면서 우리에게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성인은 자기 고집과 욕심의 없음으로 참으로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성인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런 성인이 되어야겠지요. 비워져 있으며 비워져 행하는 존재가 되어야겠지요.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2022년 1월 3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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