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며 적어 놓는 생각의 날림
오늘은 그냥 쉬기 위해 휴가를 썼다. 쓰고 보니 올해 첫 휴가였다.
쉬는 날엔 텍스트와 함께 보낸다. 글을 읽고 쓰고, 새로운 글을 새로운 플랫폼에서 찾아도 보고. 그러다 예전에 썼던 글도 들추어내다가 발견했다. 딱 그 시절의 메모가 있다. 원체 고민과 의심, 생각이 참 많은데 그때 생각이 집약적으로 적혀 있었다.
2년 전 혼자 유럽을 다녀온 다음 날, 바로 디자인 스펙트럼 행사에 갔었다. 그리고 그 해에 퇴사를 결심했다. 2019년 중순까지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고민으로 내 메모장은 OKR과 해내기 위한 그럴듯한 계획들로 넘치고 있었다. 완전 주니어에서 이제 나도 뭘 좀 알겠는데? 하던 때여서 머리 굵어졌다 이거지.
디자인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잘 설명하고 좋게 인정받고 싶어서 참 안달이었다. 솔직히 불안함이 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은데, 남들도 좋다고 인정할까? 난 이 일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내가 하고 있나? 사람들이 원하나? 나조차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서 그저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선에서 그 고민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때쯤이다.
'아, 이런 식으로는 그만 애쓸래'
인정받기 위해 근거를 샅샅이 찾아가기보단 스스로 내 가치, 내 일을 믿고 해내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에서 중요한 건 '근거'보단 '해내는'것이다. 결국 완성. 그 완성이 모여 근거가 된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인정과 신뢰는 해내는 사람에게 생기더라.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저 사람이랑 같이 하고 싶다에 '저 사람'이 되기.
메모 마지막 줄에 쓴 '비주얼은 충분히 논리적이다'라는 말을 스스로 확신을 갖고 마침표를 찍기까지 오래 걸렸다. 리뷰할 때마다의 불안함과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된 긴장감 덕분에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배워서 먹는 건 나여야 한다. 그때 이후부터는 전 직장이나 지금이나 내가 확신하는 부분에서 다른 확신이 있는 사람이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예전엔 근거를 하나하나 찾아서 완벽히 설득하려 했는데, 내가 확신하는 걸로 해내기만 하면 되니까 별 상관이 없게 되었다.
아마 다음 단계는 '잘 책임지는 법'을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사실 크고 작든 프로젝트는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기분 좋고 성취감만 느끼고 싶은데 그렇지만 않다. 책임지려면 해내야만 하지만, 더 많은 피드백과 장애물이 많을 것이다. 또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 산은 높아지겠지. 뭐, 나중에 할 고민이다(무책임). 일단 지금은 해내기!
진정성.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 어디에 가장 집중하냐.
정답. 어디가 정답에 가까운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좋은 건 어떻게 판단할까?
커머스 서비스를 하는 이상, 매출에 계속 지는 레이스를 달리는 기분이다. 반대쪽 같은데 같은 방향을 보고 싶다.
그 반대쪽은 좋은 제품. 내가 생각하는 '좋은'건 일상에 주는 영향과 소통을 어떻게 하고 있나.
서비스가 성장하는 건 일반적인 시장에 진입하는 것일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일까.
비주얼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 2019년 8월, 그때의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