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원작, 이라는 타이틀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게 한다. 제인 오스틴 책은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만 읽었는데 제목에서 보듯이 예민한 대립 구조를 다루기 때문에 둘은 꽤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 <오만과 편견>을 5번은 본 듯하다. 남주 빼고 완벽한 영화. 제인 오스틴 특유의 섬세한 감정의 선과 여린 듯하지만 단호한 묘사가 꽤 잘 녹아있었다. 그런 걸 기대했으면 안 됐는데. 결론부터, 영화는 참 재미가 없었다. 시대극 특유의 재밌는 볼거리도 없었고. 하지만 원작은 정말 재밌겠다, 라는 건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주문했다.
<설득>은 첫사랑의 열병과 절절한 후회 이야기다. 주인공 앤 앨리엇이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을 결혼 '시장'이라는 규칙 때문에 떠난 뒤,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렇게 섬세한 사람일수록 후회는 깊고 짙다. 예민한 사람이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가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 의견을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8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만, 자신의 실수를 잘 알기에 불쑥 다가가거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도 없다. 자존심이라고 뭉개서 표현하기엔 그보다는 부끄러움, 미안함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섬세함이 다코타의 표정 연기로만 겨우 표현이 되었는데, 연출과 개연성 그리고 또 남주가 너무 별로라 아쉬워.. 연출을 무슨 브리저튼처럼 했는데, 브리저튼이 훨씬 재밌어..
제인 오스틴은 제목을 참 잘 짓는다. 그 시대 여성이 인생에서 가장 감정의 요동을 크게 느끼는 시기는 막 결혼시장에 나왔을 때다. 신분사회, 여성이 일 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신분으로 선택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앤 앨리엇은 자신의 마음을 거스르는 이 현실적인 사실에 ‘설득'당했다고 표현했다. ‘타협'보다 우아한 단어다.
‘설득'이라고 하면 내 의지가 적어 보인다. ‘타협'은 꽤 능동적 이어 보인다. 결국 앨리엇은 자신의 신념을 거스르지 않고 그 사람과 결혼했으니 그때는 내가 ‘설득'을 당했었다,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겉으로만 보면 현실의 벽을 이긴 사랑의 위대함 같은 판타지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신념'을 그려가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단단하고 현명하다고 총애받는 사람, 견고해 보이는 둘의 약속 같은 것이 얼마나 갈대 같은지.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시선들 사이에서 내가 믿는 신념을 당당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까. 누군들 어설프게 실수하고, 그리고 후회한다. 어릴수록, 남들이 시선에 더 귀 기울일수록.
그때 중요한 건 나와 닮은 단 한 사람이다. 앨리엇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아주는 웬트워스 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든 믿을 구석이 하나만 있어도 평안해진다. 내가 나를 의심할 필요가 없어진다.
요즘엔 사람들이 자기애는 강하지만 신념이 약하다 생각한다. 아마 일거수일투족 노출이 되고, 그 시선을 자양분 삼아 또 보여주기 위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그래야 외롭지 않다고 느끼니까. ‘나’라는 자아는 ‘남'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지만, 그건 흔히 얘기되는 ‘셀프 브랜딩'은 아니다. 그것이 돈이 될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나에겐 공허하다.
어렵다. 꼿꼿하게 나를 유지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은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얘기는 수다거리로는 적합하지 않다. 내 결에 맞는 사람만 쏙쏙 골라서 만나는 것도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니.
언젠가 서래처럼 말할 수 있게 될까. ‘마침내'.
별로 재미없는 영화인데, 후기가 길었다. <설득> 원작 후기를 찾아서 읽다보니, 그저그런 첫사랑 얘기가 아니라 제인 오스틴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작가였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설득'당하기 쉬운 그리고 그걸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 나는 어떤 신념이 있나, 그걸 신념이라고 불러도 되나? 고민이 쏟아지던 주말 저녁에 글감으로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