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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rin Jun 28. 2023

에디터에게 필요한 역량을 묻는다면

안타깝지만, 질문부터 잘못됐습니다.

질문이 잘못된 이유는, 에디터도 저마다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을 목적으로 제작하는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브랜딩 대상이 제품인지, 채용인지에 따라 기획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소속 팀을 기준으로도 에디터 직무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소속 팀과 주요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한 후에 역량을 묻는 것이 정답이겠죠. 실제로 강연이나 멘토링에서 저는 매번 똑같이 대답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에디터가 되고 싶은지 말씀해 주세요.”

놀랍게도 F입니다 >_<

Q. 콘텐츠 에디터 역량이 궁금합니다.

A. 이 또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떤 콘텐츠를 주로 제작하는 에디터인가요? 소셜 미디어 포맷의 콘텐츠를 제작하는지, 브랜드 아티클을 작성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전자라면 짧은 텍스트와 임팩트 있는 이미지 활용으로 수만 개의 콘텐츠를 제치고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만들 줄 알아야겠죠. (쉽게 말하면 마케팅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유료(paid) 광고를 고려했을 때 후자보다 노출, 전환 등의 데이터에 더욱 민감해야 할 테고요. 후자는 비문 없는, 그러나 술술 잘 읽히는 문장을 속도감 있게 쓸 줄 알아야 하며 브랜드가 이야기할 수 있는 한정된 글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Q. 아니, 아무튼 그 모든 에디터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역량이 있지 않을까요?

A. 글쎄요. 그럼 '글 잘 쓰는 능력'이라고 가정해 볼까요? 생각보다 (글쓰기가 전문 영역이 아닌) 콘텐츠 소비자는 완성도 있는 글을 찾지 않습니다. 설령 오타가 좀 있더라도, 알맹이가 있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글을 소비하죠. (이는 비단 텍스트뿐만 아닙니다. 내가 만약 <변기 뚫는 방법>을 알고 싶을 때, 영상 편집이 예쁜 쇼츠 영상을 찾나요? 최대한 짧은 시간 내 방법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영상을 찾겠죠.) 유료 구독형 플랫폼 에디터도 비슷합니다. 비문, 맞춤법 오류는 반드시 피해야겠지만, 타깃을 고려하지 못한, 탄력성 없는 기획과 내용 구성은 소용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경제 콘텐츠를 다루는 에디터라고 가정한다면 '글 잘 쓰는 능력'보단 '다양한 경제 이슈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이를 쉽게 풀어쓸 줄 아는 능력'을 회사에서는 주요한 역량으로 꼽을 겁니다. 대단한 작문력보다는요. 즉 각 소비자(타깃)에 맞춰 에디터 주요 업무는 세분화되고, 그에 상응하는 능력이 달라진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라고요.

Q. 저는 에디터로서 긴 호흡의 기사를 잘 쓰고 싶어요.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 될까요?

A. 1:1 코칭은 찬성, 그룹 단위의 강의 혹은 비대면 강연은 반대입니다. 물-론, 모든 교육 콘텐츠는 도움이 되겠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진 못할 겁니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성인이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신입인데 나중에 진짜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매거진을 제작하는 에이전시(그다음으로는 인하우스)를 첫 커리어로 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업무 강도 극강이고요, 연봉 눈물 납니다. 그런데, 능력 있는 사수에게 기사 쓰는 훈련을 1년만 받으면 그 기본기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 조심스럽지만, 또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게 글쓰기 역량을 쌓은 사람은 다른 배경, 같은 연차의 에디터와 실력 차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그 간극은 더 선명하게 보이고요. 글 잘 쓰는 사람? 많습니다. 빠르게 글 잘 쓰는 사람 의외로 찾기 어렵습니다. 한 통의 글을 통일성 있고, 기승전결 명확하게 구성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요.


Q. 에디터 포트폴리오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A. 다른 직무와 똑같습니다. 지원 직무에 맞춰 준비하면 됩니다. 콘텐츠 마케터에 가까운 에디터 직무는 온드미디어 성격의 콘텐츠 제작물을 데이터와 함께 보여주면 좋겠죠. 여기서 데이터란 '데이터 나열'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통해 자사몰 유입을 높인다'라는 과제 정의를 주제로 잡는다면, 해당 과제가 등장한 배경부터 기획과 진행 그리고 성과까지의 전체 흐름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가 이력서를 검토하는 면접관이라면, 앞장부터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첨부하며 글쓰기 역량을 강조하는 후보자를 채용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왜 에디터 역량은 하나로 묶어서 보려고 하는 걸까'라는 답답함에서입니다. 개발자, 디자이너 등의 직무는 더더욱 세분화되며 각 분야에 맞는 기술에 집중하는데 에디터는 그런 시도가 비교적 적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패션 커머스 플랫폼에서 저와 같은 에디터를 콘텐츠 에디터 포지션에 채용하려고 할까요? 글은 조금 느리고, 가볍게 쓰더라도 패션 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패션 트렌드에 관심이 깊은 누군가를 채용하려고 할 겁니다. 그 플랫폼에 진입한 유저는 '글'을 읽으러 온 게 아니라, '옷'을 구매하기 위해 온 거니까요. 기획전 페이지에 비문이 있더라도 유행과 취향에 맞는 옷들이 멋지게 큐레이션 되어 있다면 유저 만족도 또한 높을 테고요. 그러니까, 우리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좀 더 뾰족한 T형으로요. (저 진짜 T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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