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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un 19. 2021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기

이 사진은 도대체 왜 찍었지? 싶은 B컷 사진첩 #.1

필름 카메라를 찍던 시절엔, 찍었던 모든 것이 인화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기도 했고, 가끔 나오는 실패작도 다 추억이고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어 주곤 했다. 그리고 사진들은 '앨범'이라는 파일에 끼워 두었다. 그러다 기술이 발달해 디지털 카메라가 나타났고, 이후 핸드폰에 카메라가 장착된 순간부터 사진이라는 것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꺼내들고 기록할 수 있는 무기가 생겼고, 그 개수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찍고, 지우고, 재촬영한다. 그렇게 찍은 것들 중 '인생샷'은 SNS나 인화해 따로 남겨두지만, 잊혀진 ‘B컷’들은 핸드폰 사진첩이나 메모리 카드 어딘가 남겨질 뿐이다. 이쯤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날로그 사진기로 찍었던 그 때가 좋았지’식의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나도 친구들이나 동년배들을 만나면 옛날 우리 시절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웃어대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는 있지만, 이번만큼은 문명이 만들어준 좋은 점을 털어보고자 한다. 


수없이 많은 순간에 사진을 찍게 만들어준 핸드폰 카메라 속  ‘B컷’들에 오히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있다. 지나가다 찍은 하늘 사진, 거리의 길고양이, 문득 발견한 예쁜 가게 등. 지금도 내 핸드폰에는 몇만장이나 되는 사진들이 있지만, 이 중에서 선택받아 SNS에 올라간 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며(심지어 이제는 SNS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가끔 종종 심심할 때마다 거슬러 올라가 감상할 뿐, 고대로 그 자리에 있다. 이 시리즈는 그 B컷들을 모아서 정리할 생각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 것을 찍었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안에도 분명 내가 있다. 


주인을 찾습니다.


언젠가 지하철 역 대합실 의자에서 발견한 로또 한 장. 주인은 없고 종이 한장만 덩그러니 있었다. 실수로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못 챙겨간 걸까, 아니면 오늘도 설마하고 기대를 품고 샀는데 역시나 인 결과 때문에 실망스러워서 놓고 간 걸까. 


나는 로또를 사 본적이 없다. 앞으로도 딱히 큰 이유가 없는 한 사지 않을 것 같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 일엔 마음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가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는다. 나는 오래도록 이 간극 때문에 힘들어 했었다. 대학을 정할 때에도, ‘무조건 성적부터 올려, 그럼 선택지가 넓어질테니까’ 라고 하는 충고에, 사실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목표가 없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목표’라는 것은 ‘성적을 올리는 것’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더 거대한 의미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법학을 배우면 걸 배우면 보람도 느끼고, 정의를 지킬 수 있어’ 같은. 그러면 아 법학을 배워야하니 공부 열심히해야지, 라는 목적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명확한 답이 없는 것, 뜬구름 잡는 이야기,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론들. 그런게 좋았다. 내 자신을 천성 문과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런데에 있다. 답이 하나 뿐인 수학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그 어떤 풀이 과정을 거쳤더라도 상관없이, 답이 맞으면 맞는거고 틀리면 가차 없이 아웃이다. 세모는 없다. 동그라미 아니면 엑스. 그 명확함이 싫었다.


반면, 단 한문장의 질문만 주어지고 한 페이지를 쓰라고 하면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끌어모으고 모아 쓸 자신이 있었다. 내가 대학 1학년 시절이었다. 어떤 교양 수업을 들었었는데, 시험을 보기 직전 내 곁에 앉은 애들 둘이서 자신들이 공부했던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눠준 시험지엔 정확히 그 문제가 있었고, 나는 전혀 그 부분을 공부하지 못했으며 흘려 들은 것이 전부인 상태에서 무작정 써내려갔고 결과적으로 A+를 받았다. 물론 그게 전공이 아니라 교양이어서 그 정도로도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그래서 로또에 거는 기대가 없다. 답은 오직 여섯자리. 맞으면 맞는거고, 아니면 그대로 끝이다. 그냥 지하철에 버리고 가는 종이 쪼가리 하나가 될 뿐이었다. 그 사이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돈이야 많으면 당연히 좋겠지. 나 역시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건 당연한 욕망이다. 그럼 내가 지금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가격 따지고 재질 따지고 할 필요 없이 그냥 ‘싹 다 주세요’ 하고 구매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살 수 있는 모든 걸 살 수 있는 삶이 내게 필요한 삶인가, 라고 하면 글쎄. 그리고 무엇보다 로또로 되는 금액은 크긴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사고 싶은 모든 걸 보장해주는 금액은 아니다. 아, 그래도 만약 내가 (사지도 않은) 로또가 된다면 하고 싶은거 생각났다. 해외 유학은 문제 없겠다는 생각. 그 돈으로 1~2년 쯤 해외서 살다 오면 딱 좋겠네. 


어쨌든 내 결론은 이거다. 모든 사람이 로또를 꿈꾸는 삶보단,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로또를 사는게 잘못 되었다는게 아니라, 그런 요행과 몇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행운 이외에도 자신만의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 삶에는 표면적인 것보다 언제나 'Read between the lines'가 중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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