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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un 27. 2021

비상구 좌석에 앉은 사람의 의무

이 사진은 도대체 왜 찍었지? 싶은 B컷 사진첩 #.2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공항에 가는 설렘, 짐을 다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기대감과 약간 두려움에 걱정이 섞인 묘한 감정이 든다. 어릴 때부터 2019년까지, 비행기 탑승 경력을 꽤 많이 쌓은 편이었는데, 이 경력을 통해 여러 좌석에 앉아본 결과 가장 좋아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겼고(물론 비즈니스을 타봤으면 그게 1순위겠지만…), 그건 바로 이 비상구 좌석이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이 가끔은 무서운, 비상구 좌석


이코노미 석은 항상 바짝 앞뒤가 붙어있다. 비행기 종류와 항공사에 따라 앞뒤 간격이 그래도 조금씩 차이 나겠지만, 기본적으로 무릎을 펼 수 없는 구조이다. 짧은 비행이면 그래도 참을만 하지만 10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장거리고 내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 타입이라면 가장 안쪽, 창가 자리는 최악의 선택이다. 나도 처음에는 창 밖으로 하늘이 내려다보이고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도시 모습을 보는게 신기해서 창가 자리를 선호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몇시간이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서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했다간 아마 내릴 때 쯤이면 다리가 저려서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만 했다. 그러니 옆에 앉은 사람이 그래도 친한 사람이거나 동행이라면 편하게 나 좀 일어날테니 비켜달라, 하겠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옆 사람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옆 사람이 자고 있을 때나 식사 하고 있을 때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불편한 상황이 발생해버린다. 그런 불필요하게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자 나는 우선적으로 복도 쪽 좌석을 잡는다. 차라리 내가 일어나서 비켜주는게 낫지.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 받을 때도 편하고. 


비상구쪽은 여기에서 편리함이 하나 더 추가 되는 게, 앞이 드넓기 때문에 다리를 마음대로 뻗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 사람 좌석을 차게 될 일도 없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앞 좌석 등받이를 있는 힘껏 잡아 당길 필요도 없다.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만큼 드나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비상구 좌석에도 몇 가지 불편한 점 역시 존재하기는 한다. 첫째로, 이착륙 시 승무원과 어색하게 마주 앉아야 한다. 그러나 이건 아주 잠시니까, 그냥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둘째, 보통 앞 좌석 등받이에 붙어있는 식판과 화면이, 팔걸이 쪽으로 가 있기 때문에 그걸 잡아당겨서 올리면 약간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데, 아무나 안 앉혀 준다는 점이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는 조건이 붙는 이 좌석은 비상상황 발생시 승무원을 도와 사람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석 티켓을 안내 받을 때 부터 이 의무를 설명 들어야 한다. 그럼 마치 내가 이 비행기의 중요한 미션을 받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승무원의 역할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최우선으로 꼽히는 역할은 아마도 ‘안전’일 것이다.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는 부수적인 업무이다. 외국 항공사를 타면(특히 유럽, 미국) 친절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앉으라면 앉아야 하고, 벨트 매야 하면 매야한다. 그런 말들을 웃으면서 친절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비상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서 그런가, 승무원들을 항공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예뻐야하고, 늘 미소를 띄고 있어야 하며, 말투는 친절해야 하고, 풀메이크업에 머리는 한올도 내려오지 않게 깔끔하게 올려야 하고.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무렵, 한 항공사의 승무원에 지원한 적이 있고 면접을 봤었다. 승무원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정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었던 것 같다. 승무원 면접은 흰 셔츠에 검정 치마를 입고, 다섯명 정도가 되는 지원자가 한번에 들어간 다음 서 있어야 했다. 그 때 옆 지원자가 했던 한 마디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 4kg를 감량했다고 했고, 면접관은 그걸 굉장히 좋게 평가했었다. 나는 그게 좋은 건가? 생각했다. 물론 건강을 위해 감량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날씬한 몸이었다. 나는 그 순간 백조들 사이에 낀 미운오리새끼처럼 굉장한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그들 중 가장 뚱뚱했고, 가장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다. 


탑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조건은 오직 ‘신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기가 왔을 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응능력. 필요할 때 적절히 저 비상문을 힘껏 닫고 열 수 있는 능력. 빠른 상황 판단과 남들을 위해 기꺼이 낼 수 있는 용기. 얼마나 날씬하고, 예쁘고 착하게 웃느냐가 아니다. 그러니 승무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지금과는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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