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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ul 26. 2021

진짜 눈의 나라 : 삿포로와 오타루

지극히 평범한 여행 소감 기록#.4

다음으로 갈 여행지를 고르는 데엔 보통 ‘한 가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 한 가지는 우연히 본 사진 속 한 장면이 되기도 했고, 특정한 어느 장소이기도 했고, 어떤 활동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를 가기로 한 것은 오직 오로라가 목표였고, 프랑스를 가기로 한 것은 에펠탑 때문이었다. 내가 확 꽂히는 것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삿포로를 가기로 결정했을 때의 경우엔 그것은 ‘오르골당’이 되었다. 삿포로 근처의 오타루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오르골당.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에서 본 새하얀 설원. 새하얀 설원 위에 올려진 아름다운 오르골이라니. 그 이미지만으로도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도착한 첫날. 이미 잔뜩 쌓여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삿포로와 오타루는 가족 다 같이 간 세 번째 여행지였다. 첫 번째는 유럽이었고 두 번째는 오사카였다. 유럽과 오사카의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번 글의 목표는 겨울에 갔던 눈의 나라. 설국, 삿포로. 사실 눈을 잔뜩 볼 것이라 기대한 곳은 삿포로 보단 아이슬란드였다. 무려 이름부터가 Ice + Land 가 아니던가. 얼음왕국을 보겠다는 그 설레는 마음으로 갔던 나라는 또 한 번 날씨 요정의 농간으로 인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삿포로는, 땅에 내딛자마자 눈이 펑펑 내려줌으로써 내 기대를 200% 만족시켜 주고야 만다. 


작고 아담한 기차역

첫날은 저녁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오타루로 건너간다. 오타루는 훨씬 작은 도시여서, 주변의 하얀색 눈이 훨씬 많이 시야에 들어왔다. 난 추위를 싫어한다. 추워 죽느니 더워서 쪄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눈은 좋아한다. 세상을 새하얗게 덮어버리는 눈의 향연은 낭만적이다. (뭐가 구체적으로 낭만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MBTI는 INFP, 구체적인 무언가를 나열하는 것엔 소질이 없고,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이미지를 그리는 상상만 잘한다. ‘느낌적인 느낌’이란 말을 누가 제일 먼저 썼는지는 모르지만 기가 막히다. 그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오타루 운하
오르골당
이거 보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타루에서 드디어 오르골당을 본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와 디자인의 오르골들이 줄지어져 있다. 누가 봐도 일본스러운 디자인도 있고, 그냥 평범하고 일반적인 디자인도 많았다. 일본 여행 왔으니까, 기념으로 일본 느낌 물씬 나는 고양이로 하려다가 관두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한국에 있는 일식집에 늘 한두 개씩은 존재하는 것이랑 다를 게 없어 보여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는 것에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회전목마 형태의 디자인에 ‘It’s a small world’ 노래가 나오는 것으로 선택했다. 


'Makeup'이 '구성하다'가 되어버린 번역.
이렇게 도로선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운전하지,라고 생각한 답이 이 안에 있다.
눈에 의해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지지해 놓은 끈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별거 아닌 간판 하나도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번역이 잘못된 안내판이라던지, 눈이 많이 오는 나라답게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둔 현상이라던지, 눈이 많이 내리면 보이지 않는 중앙선을 상단에 표시를 해둔 점이라던지. 그 나라의 날씨와 상황에 따라 도로의 모습에 그려지는 공공시설들이 그 나라의 특색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차주 가슴 찢어지는 사진. 자동차 살아있나요...?


삿포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하나 꼽자고 하면, 안도 다다오의 ‘언덕 위의 부처(Hill of the Buddha)’다. 엄마가 불교이기도 했고, 내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좋아하기도 해서 선택된 장소였다. 몇 날 며칠, 몇 달 간이나 쌓아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눈의 높이는 거의 내 허리까지 올라왔다. 이런 날씨에도 버스 운행해줘서 감사할 지경이다. 이쯤 되니 날씨의 요정을 잘못 부르는 건 내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 어쨌든 이곳은 약간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모든 걸 조용하게 만드는 거대한 설경, 사람이 없는 고즈넉함까지. 찬 바람이 볼을 스칠 때 코 훌쩍이게 되는 것 까지도 기억나는 풍경이었다. 


물의 정원, 이 있어야 할 곳엔 눈의 정원뿐이었다.
조금씩 걸어 들어가다 보면,
저 끝에 빛이 쏟아지는 곳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들면 보이는 풍경.

이곳은, 도착하자마자 부처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 끝부분만 봉긋하게 보일 뿐. 가운데로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터널 같은 것이 나온다. 그리고 터널 끝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서서히 부처의 모습이 아래에서 위까지 고개를 들어 보게 되면서, 동그랗게 뚫려있는 천장을 통해 하늘과 연결된 부처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게 된다. 나는 이 구조로 인해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부처를 올려다보면서 경외심을 갖게 하는, 그런 UX으로 뛰어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삿포로에서 먹어야 한다는 3 대장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라멘, 칭기즈칸, 그리고 수프 카레. 라멘집은 라멘 골목을 들어갔다가 뭔가 사람들이 줄을 바글바글 서 있는 데가 부담스러워 바로 옆의 가게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좋았던 곳. 칭기즈칸은 블로그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그곳으로 갔는데, 무려 3시간을 기다렸다. 3시간. 자리에 앉아 먹었을 때가 이미 8시가 넘었을 때였다. 맛은 있었으나 이게 진짜 맛이 있어서 그런지,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맛있게 느껴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마지막은 수프 카레. 여기도 블로그 출처를 믿고 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한 수확을 얻었다. 추위에 덜덜 떨다가 먹은 따뜻한 수프 카레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연히 들어간 라멘집.
3시간을 기다렸던 칭기즈칸 집.
그리고 최고의 수프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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