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의미
25년 3월 봄.
봄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 인생에서 많은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올해 저는 그런 봄처럼 새로운 시작이 유난히 많이 찾아오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현재 임신 31주. 약 8개월 차 임산부랍니다. 임신 중기까지는 거의 임산부 티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볼록 나온 배가 눈에 띄어 정말 임산부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매일 물고기처럼 꼬물거려요. “한 성격 하겠구나~” 싶은 게, 옆으로 누워있으면 배가 바닥에 눌려져 불편한지 바닥에 닿은 배를 계속 밀어내기도 하고, 배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읽으면 발로 쿵쿵 차기도 해요.(웃음) 자리가 좁으니 누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낯도 가리고 소심한 편이지만, 꽤 고집이 세서 제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고집만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미 닮아버린 것 같은 뱃속의 아이.
실제로는 성격보다 건강함을 의미한다고 해요.
그런데 살다 보니 고집이란 것도 조금씩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양보, 배려, 이해,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며 뾰족하고 못난 부분들을 깎아낸 시간이 있었어요. 바로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제 신랑입니다. (물론 좋은 뜻만 있다는 게 아니에요!(웃음))
결혼하고 정말 많이 싸웠거든요. 때로는 “이혼이 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부부상담을 알아볼 만큼 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점점 지쳐가고, 체력적으로는 피로가 쌓여갔어요. 싸우고 나면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가득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떠나질 않았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단, 제 자신이 불쌍해 보였어요.
연애야 “헤어져!” 한 마디면 끝이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혼도장도 찍어야 하고 집도 정리해야 하고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싸우는 것도 결국 서로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싸웠겠죠. 애정이 없으면 싸울 일도 없잖아요. 밉다가도 좋고, 짜증 나다가도 안쓰럽고 마음이 늘 그랬어요.
여러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가며 부부관계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변화를 위해선 혼자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그래서 말했죠. “우리 서로 말을 예쁘게 하자. 혼자 바뀐다고 개선되는 게 아니래. 지금부터 같이 노력해 보자.”
저는 짜증을 줄이기 시작했고, 신랑은 함축해 말하는 습관을 고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바보 같은 질문,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걸 정말 싫어해요. 신랑은 길게 늘어 말하는 걸 정말 싫어하죠. 그런데 각자 가장 싫어하는 부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겠어요. 매일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치고 싶었습니다. 속으로 “신랑은 바보다~”라고 되뇌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몸져누울 것 같았어요.(웃음)
신랑도 아마 저와 똑같았을 거예요.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이해하는 제 모습이 얼마나 답답하고 피곤해 보였을까요.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치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얼음이 봄햇살에 스르륵 녹아 강물이 되어 흐르듯, 저희 부부의 차갑고 냉소했던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의 계절, 봄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사이가 좋아지니 돈도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마음이 맞으니 자연스레 가계도 돌아보게 되고 함께 미래계획도 세우게 됐어요.
양가 도움 없이 각자 모아 놓은 쥐꼬리만 한 돈으로 시작했던 우리가 으쌰으쌰 살아가게 된 계기였습니다.
양가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에 애초에 도움을 기대하지도 못했어요. 가끔 주변에서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 부모님의 노후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너희만 잘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부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열심히 살자!’라는 마음을 되뇌며 더욱 깊이 새겼어요.
때로는 부모님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려운 형편에 이만큼 키워주신 것이 감사해 늘 마음이 뒤숭숭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신랑과 마음 모아 저축도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하나씩 이루어갈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해져요. ‘나도 열심히 하니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뿌듯하더라고요.
코로나19가 저에게 준 취미. 바로 요리입니다.
신혼이기도 했고,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 좋아하는터라 요리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외식이 줄어들었고, 마트 방문이라는 이름하에 틈틈이 외출도 하게 되었습니다.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며 구매하는 것도 재밌고, 집에 와서 손질하고, 불을 켜며 요리하는 시간은 지루한 코로나 시기를 견디기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요리라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하다 보면 늘고,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더라고요. ‘간신’ 신랑이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간의 신’이라고 해요.(웃음)
한식은 제법 자신이 있는데, 사실 다른 요리들은 많이 부족해요. 다양한 음식을 자주 접하지 못해서인지 맛을 찾아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식은 워낙 익숙하게 접해온 덕분에 맛을 찾아가는데 조금 수월하게 느껴져요.
게다가 엄마가 요리를 워낙 잘하셔서 간을 볼 때면 늘 집에서 먹었던 익숙한 맛을 떠올려요. 그리곤 그 맛을 더듬어 찾아가다 보면 늘 성공했습니다.
특히 요리에서는 조미료의 맛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간장, 고추장 같은 한식 조미료는 워낙 익숙해 맛을 보지 않아도 조합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데, 외국 조미료는 아직도 많이 낯설어 감이 잘 잡히지 않아요. 그래서 언제나 양식 요리는 실패라죠.(웃음)
신랑은 리액션이 좋아요. 정성에 감동해서 고마워하는 리액션이 아니라, 맛에 대해 솔직하고 거짓 없는 리액션으로 말이에요. 맛이 없으면 그릇을 가차 없이 옆으로 치워버리기도 하고, 얼굴 근육 전체를 찡그리며 물로 입을 헹궈버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좌절감이 밀려오면서 시무룩해지곤 해요. 그런데 또 맛있을 때면 먹는 내내 맛있다고 말해주니 자존감이 한껏 올라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를 잘 다루는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한참 많이 싸울 때에도 요리는 쉬지 않고 한 덕분일까요. 저녁에는 늘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하루를 풀어냅니다.
식사가 주는 힘.
함께 밥을 ‘차려’ 먹는다는 건, 느슨한 우리의 관계를 하나의 실로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 같아요. 어색한 사이일지라도 밥 한 끼를 나누고 나면 괜히 가까워지고 편해지는 것처럼, 집밥이라는 따뜻함 속에는 가족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어요.
30분 남짓의 짧은 식사를 위해 2-3시간을 들이게 되는데 저는 오히려 그 시간이 즐겁습니다. 식재료를 고를 때면 조금 더 예쁘고 신선한 재료가 우리 가족의 영양을 더 채워줄 것 같은 마음에 이것저것 비교하며 고르게 되고, 조리를 할 때면 영양과 건강을 생각하며 우리 가족의 입맛에 맞춰 조리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 차려지면 신랑은 앉기도 전에 의자를 빼며 감탄을 합니다. 좋으면서 괜히 아닌 척. 미소를 숨기며 아무렇지 않게 “맛있게 먹어”라고 한마디 건네죠.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떠먹고 밥을 크게 한 숟갈 퍼서 먹는 신랑을 보고 나서야 저도 비로소 숟가락을 듭니다. 신랑의 반응이 궁금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곧 신랑의 맛평가가 시작돼요. 그렇게 맛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저도 편안한 식사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럼 저도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하는 신랑의 무거운 어깨를 좀 더 배려하고 응원해 줘야겠구나. 이렇게 저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법을 배워가며 조금씩 고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가 아니라, 우리를 가족으로 이어주는 소중한 의미가 되었어요.
오늘도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 하셨나요? 소박한 밥상이라도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을 달그락거리며 나누는 한 끼는 마음까지도 건강하게 채워줍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온기에 가족들은 사랑과 정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럼 오늘도 그런 따뜻한 한 끼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