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입양을 고민하는 반려인을 위한 변명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적지 않은 반려인들은 둘째 입양을 고민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종일 혼자 주인을 기다리는 반려동물이 안 됐어서, 친구라도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서다. 과연 그럴까.
우리 집엔 개가 세 마리였다. 코커스파니엘 초코가 우리 집에 가장 먼저 들어온 대장이었고, 이어서 갈데없던 요크셔테리어 꼬맹이와 몰티즈 순돌이가 우리 집에 식구로 합류했다.
초코와 꼬맹이는 서로를 의지했다. 산책 나가서 안 오면 돌아보고 기다렸고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순돌이는 우리 집에 와서 소변을 아무 데나 하는 습관이 생겼다. 배변훈련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 질투가 심해서 공격적 성향까지 생겼다.
할머니 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순돌이는, 이미 터줏대감인 초코와 꼬맹이 형님들에 밀려 뒷전이 된 신세가 너무 싫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 두 형님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순돌이 세상이 됐다. 우리 가족은 모든 사랑을 그에게 온전히 쏟았다. 사랑을 나눠 준 게 미안해서 한 번이라도 더 놀아주고 예뻐해 줬다. 그러자 순돌이는 이름처럼 순해졌고 표정도 밝아졌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1>에는 카우보이 인형인 우디와 장난감 친구들이 장난감 주인인 앤디가 생일파티에서 자신들을 대체하는 장난감을 선물로 받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디가 느끼는 공포는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유기공포에 가깝다.
아동 심리학에서는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가 느끼는 감정을 "남편이 새 부인을 데려왔을 때 본처가 느끼는 기분"에 비유하곤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점차 독립한다. 형제는 서로 의지하며 우애를 쌓기도 한다. 하지만 개는 평생 주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다. 영원한 경쟁자에 가깝다. 거기다 자신과 맞지 않는 개가 입양될 경우엔 싫은 존재와 평생 한 공간에서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운 좋게 초코와 꼬맹이처럼 성향이 맞으면 의지하며 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순돌이처럼 평생을 샘을 내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인간 형제는 자라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지만, 주인의 사랑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평생을 경쟁해야 하는 개들에게 둘째는 '선물'이 아닌 '벌'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하루 종일 반려견을 집에 두고 돈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을 개에게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라떼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훈련사님의 이 말이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사랑을 오롯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양보다 질이란 소리다.
실제 반려견과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휴대폰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퇴근해서 15분이라도 노즈워크하고 재밌게 놀아준다면 행복 호르몬이 더 잘 나온다고 한다.
집에서 노트북을 보며 일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 라떼가 어김없이 와서 낑낑대며 보챈다. 놀아달라고. 나 하루 종일 혼자 있었는데 엄마 집에 까지 와서 나 안 봐주고 그럴 거냐고.
결국 오늘도 브런치 글쓰기는 목표를 채우지 못했고 책 읽기는 글렀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나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미는 이 작은 생명에게,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함께 있는 시간의 양'으로 사랑을 측정하려 든다. 미안함이라는 부채감을 덜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들이면 어떨까 고민한다. 하지만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나를 대신할 복제품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나와 오롯이 주파수를 맞추는 진공 상태가 아닐까.
사랑은 나눈다고 커지는 산수가 아니다. '친구가 없어 외롭지 않을까'라는 인간 중심적인 연민은 답이 아니다. 홀로 나를 기다려준 그 고독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돌아온 즉시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그 빈자리를 메워주는 '압도적인 집중'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라떼의 눈을 맞추며 다짐한다. 시간없음에 연연하며 변명하는 비겁한 주인이 되지 않겠노라고. 대신, 짧더라도 너의 온 세상을 내 눈동자에 가득 담아주는 '밀도 높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표지 그림은 브리튼 리비에르의 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