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맞추는 법
나, 퇴근하고 집에 왔을때
라떼가 꼬리 흔들고 달려오면 눈물날 거 같아.
남편의 이 소박한 기대는 우리 집에서만큼은 비현실적인 판타지다.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내 남편은 죄 지은 것도 없는데 항상 라떼에게 '기피 대상 1호'다.
남편이 퇴근하고 현관문에 들어서면 우리 라떼는 시골개 출신 답게 복식 호흡으로 짖는다. 매우 우렁차게 짖어대서 귀가 아플 정도다.
문제는 엄마나 내가 집에 올 땐 몸을 한껏 낮춰 귀를 젖히고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는 것.
야 너 진짜...나한텐 그렇게 짖더니 너무한다.
남편은 매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마저도 내가 일찍 퇴근하면 다행인데, 둘이 하루종일 있을 땐 종일 거리두기가 이어진다.
하루는 퇴근한 나에게 남편이 자기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남편은 마치 현장검증이라도 하듯 갑자기 소파에 천정을 보고 누워서 (강아지 식으로 배를 까고, 옷을 깐다는건 아니다.) 손을 바깥쪽으로 뻗어서 간식을 내밀었다.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줘도 도망가고 불러도 오질 않으니 남편은 개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 비결은 바로 '드러눕기'다. 몇날몇일을 라떼와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던 남편은 개들이 경계를 풀 때 배를 깐다는 사실에 착안해 자신의 배를 까기로 한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보고 있는데 라떼가 슬금슬금 다가오는것이 아닌가.
놀라는 내 표정에 남편은 이번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두번째 현장검증에 나섰다.
자 봐봐. 내가 앉지? 그럼 안 온다.
거짓말처럼 소파에서 바닥에 발을 딛고 앉자, 라떼가 이번엔 멀찍이 떨어져서 진짜 안 온다.
자세만 바꿨을 뿐인데. 그야말로 유레카였다.
자칭 개 심리 전문가 남편에 따르면 라떼는 남편이 싫진 않은데 무서웠던 거다. 개 입장에선 바로 공격을 할 수 있는 자세인 쭈그려 앉기, 아빠 다리 앉기, 서 있기 등은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오지 않았던 것일까. 남편은 그래서 그때부터 라떼에게 간식을 줄때는 무조건 옆에 드러눕게 됐다.
나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앞으로는 바퀴달린 판대기를 만들어서 그위에 맨날 누워서 다녀야겠다'고 놀려댔다.
이 '드러눕기' 비결은 가족 저녁 식사자리에서 공유됐다. 일흔 넘은 우리 아빠도 사실상 손주인 라떼의 외면에 섭섭함이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빠가 라떼 산책을 시켜주러 오셨을 때 웹캠을 켰다가 나는 뭉클한 장면을 목격했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거실 바닥에 라떼와 나란히 드러누워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계신 게 아닌가. 말 한마디 못 하는 조그만 생명의 마음을 얻으려 일흔의 노신사가 기꺼이 바닥에 몸을 뉘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날 산책에 실패하고 섭섭함을 가득 안고 귀가하셨다. 가족 모임에서 아빠가 토로하자 남편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아버님, 저는 어떻겠어요. 매일 보는 저한테도 아직도 짖는다니까요.
남편은 오늘도 라떼의 짖음을 뚫고 귀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오늘 새벽, 라떼가 자는 남편의 머리맡에 다가가 쓰다듬어달라고 고개를 내밀었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녀석의 변화에 요즘 남편은 잠결에도 "고마워"를 연발한다.
우리는 오늘도 기꺼이 바닥에 눕는다.
녀석의 안전거리 1미터 안으로, 그 상처 입은 세계 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그날을 기다리며.
표지 그림은 반고흐의 첫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