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인생을 받은 날
라떼를 맞이하기로 한 그날의 공기를 기억한다.
나는 아빠, 엄마, 남동생에게 모두 라떼 사진을 보내며 데리고 오기로 했다고 전화를 돌렸다. 아직은 '정식 입양'이 아닌 '임시보호'라고 강조하면서. 최근 내가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고 했을때 가족 모두 '누가 키우냐'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내가 진짜 키울 능력이나 상황이 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개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가족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애를 낳아야지 무슨 개를 키우냐'던 엄마도 라떼 사진을 보여주자 귀엽다고 반응했다. 사람 몸집만한 큰 개들 사이에 있는 영상과 사진이었는데, 10kg 정도 되는 중형견인 라떼는 상대적으로 작고 약해보였다. 하지만 큰개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해맑게 웃고 있는 표정이, 마치 나를 좀 봐달라는 얼굴로 보였다. 어쩌면 그 아이의 마음이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오늘 강아지 우리 집에 올거야. 보러 올래?"
"몇시?"
"한 6시쯤?"
"볼게"
남동생과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라떼를 맞을 준비를 했다.
띵동 -
띵동 -
나의 번개 제안에 엄마 아빠, 남동생, 남편까지 하나둘 새 가족을 맞으러 모였다. 다들 시큰둥한거 같더니 정말 그렇게 다 올줄이야.
사실 우리 가족은 얼마전까지만해도 다견가정이었다. 갈데없이 버려진 애들을 한마리씩 데려오다보니 코커스파니엘, 요크셔테리어, 말티즈, 이렇게 세마리를 키우게 됐다. 처음 키우기 시작한 시기부터 세면 아마 20년정도 될거다. 하지만 몇년전 마지막 아이와의 이별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다들 장수했다지만 이별 과정이 괴로워 내린 결정이었다. 정이 많은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시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새 가족을 들이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 같다.
라떼를 데려온 지인은 칫솔치약과 목줄, 사료와 기저귀, 배변판 등 다양한 라떼 물품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줬다. 집 안에 위험한 물건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뒤, 라떼에게 열심히 너를 버리는 게 아니고 좋은 데 데려다주는거라고 한참을 설명한 뒤 떠났다.
지인이 떠난 뒤 라떼는 불안한지 양앞발을 제 몸안으로 숨긴채 문앞에 엎드렸다. 일반 가정집에서 사는 게 거의 처음인 라떼는 모든걸 낯설어했다. 푹신한 쿠션은 다가가기 무서운 존재였고, 인형은 어떻게 갖고 노는 건지 알 턱이 없었다. 아빠와 남동생, 남편, 남자들은 슬슬 피했다. 그나마 나와 엄마에겐 접촉을 허락했지만 그 마저도 조심스러웠다. 항상 1m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사람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아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라떼가 구조된 개농장 주인이 중년 남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를 무서워하는거라고. 라떼가 한동안 썬캡 쓴 여자만 보면 놀랐는데, 그건 아마 그 가족중에 한명이 썬캡을 자주 쓰고 다닌거 같다고 했다.
라떼는 유난히 손을 올리는 제스처에 움찔하며 도망을 갔는데, 아마 라떼가 있던 우리 바로 옆에서 개를 잡은거 같아서일거라는 끔찍한 얘기도 알게 됐다. 다른 개들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직접 봤을테니 그 충격이 몸짓에 쌓인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라떼를 환영하기로 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사람을 개로 바꾸니 내 상황에 맞았다.
개가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개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날 세살짜리 한 개의 일생을 받았다.
나는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라떼에게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선물하리라 다짐했다.
마음을 읽은듯 엄마가 말했다.
"너 얘를 '임시보호'(만) 할수 있겠니?"
표지 그림은 르누아르의 <샤르팡티에부인과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