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내가 내린 가장 비이성적인 선택

너라는 계절이 내게로 오기까지

by 차시하

지나고 보면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지' 싶을 때가 있다. 내 상황이나 현실로 보았을 때 지극히 비이성적인 결정,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답지 않은 판단. 인생엔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이성의 회로가 멈추고 설명할 수 없는 끌림에 움직이는 날.


그해 여름, 나는 바닥까지 지쳐 있었다. 일도 사람도 무거웠다. 10여 년의 직장생활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던 남편 역시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다. 모든 게 귀찮고 무기력해 나 하나 돌볼 힘조차 없던 그때, 지인으로부터 예고 없는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보호소에서 갈 곳이 없다는 강아지들의 사진. 평소라면 "지금 제 상황엔 불가능해요"라고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유독 한 얼굴이 낯이 익었다. 과거 전송 이력을 찾아보니 1년 전에도 내게 왔던 아이들이었다. 그 예쁜 아이들이 1년 동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좁은 보호소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얼굴만 한 번 보라'는 제안에 못이기는척 그 아이를 만났다. 임시보호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내 시선은 무리 중 가장 몸집이 작았던 아이에게 머물렀다. 요즘 인기있는 포메라니안이나 이전에 키웠던 말티즈처럼 전형적인 귀염상은 아니었다. 몸통은 길고 다리는 짧은, 투박하지만 정겨운 '시고르자브종'.


라떼는 덩치 큰 개들 사이에 앉아서 처음 본 나에게 사연 가득한 표정으로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이 나에겐 이렇게 읽혔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주변 소음이 아득해지고, 오직 그 간절한 눈망울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대책도 없이 그날로 임시보호를 결정했다. 나의 전격적인 결정에 남편은 당황했지만, 마침 전날의 과음으로 나에게 진 죄가 있어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개농장에서 구조된 아이는 보호소를 떠돌다 그렇게 내 품으로 왔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녀석은 실외 배변만 할 줄 알았고 실내에선 절대로 일을 보지 않았다. 다 큰 성견인데, 그 흔한 '손', '앉아'도 할줄 모르는 백지같은 아이였다. 학대의 트라우마로 갑작스런 소음이나 손짓에도 깜짝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는, 정말이지 세상 모든 것을 무서워하는 겁쟁이였다. 내 인생 최고로 바쁘고 힘든 시기에,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생명이 얹혀진 셈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 출근 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아이를 산책시켰고, 회식 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아이의 배변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참고로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출근은 빠르고 퇴근은 대중이 없다. 저녁약속도 매우 잦은 편이고 주말에도 한번씩 일한다.) 하지만 내 몸의 피로함보다 입질 한 번 없이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 더 신경쓰였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견뎌왔기에 이토록 숨죽이고 있었을까.


"너 엄마 안 만났음 어쩔 뻔했어."

"힘들었지. 이제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나의 마음이 그 아이 마음에도 가 닿은걸까. 두 발을 다 숨긴 채 문 앞에서 떨던 아이는 점차 웃는 법을 배웠다. 저 멀리 성인 남성 실루엣만 보여도 긴장하던 아이는 이제 동네를 누비며 빤히 지나가는 이웃을 쳐다보고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처음 녀석이 간식을 달라며 낑낑거리는 의사 표현을 했을 때, 나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약속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꼭 말해. 다 들어줄게."


그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요즘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낑낑대며 요구사항을 쏟아내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니 나를 돌본 건 내가 아니라 라떼였다. 녀석 덕분에 나는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고, 녀석의 작은 변화에 울고 웃느라 내 안의 고통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나를 돌볼 여력조차 없던 내게,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은 사실 가장 거대한 축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 때 라떼가 나에게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벌써 계절이 한 번 바뀌었고,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여름을 앞두고 있다. 문득 1년 전 사진 속의 너를 그때 바로 알아봤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너의 네 번의 계절을 더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나간 후회 대신 나는 남은 시간을 약속한다. 네 생애에서 잃어버린 그 계절들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시간 속에서 가장 밀도 높은 사랑으로 보상해주겠노라고.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을 너의 모든 계절을 지켜내겠다는 나의 약속이다.


표지 그림은 마리로랑생의 코코샤넬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