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인사법 : 개에게 배우는 처세술

적당한 거리두기가 주는 평화

by 차시하

산책을 하다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 집 반려견 '라떼'의 인사법이 지나치게 쿨하기 때문이다.


라떼는 일단 인사하는 것 자체는 좋아한다.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코 인사로 신원 확인이 끝나면 미련 없이 돌아선다. 이제 막 항문 냄새를 맡으며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하려던 상대 개들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된다.


상대 개들은 보통 더 놀자며 다가오지만, 라떼는 한 번 돌아서면 마음을 바꾸지 않는 '직진남'이다. 뒷수습은 견주인 내 몫이다. 계속 들이대는 개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라떼 때문에 양쪽 견주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상대 견주)망구야, 라떼는 그만 놀고 싶대.

(나)아이고, 라떼야 벌써 끝났어? 친구랑 더 놀지 않고.
(나)얘가 3초면 인사가 끝나서요, 하하. 안녕 망구야, 다음에 보자!


얼마 전엔 자기보다 큰 개가 놀자고 다가오자 으르렁거리며 거부감을 표시해 나를 당황케 했다. '우리 애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곧 라떼에게도 분명한 '호불호'와 '기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들이 생겼다.


성격 쿨한 포메라니안 친구를 만났을 때, 둘은 서로를 적당히 무시하며 각자의 거리를 유지했다. 부딪칠 일도, 도망갈 일도 없는 완벽하게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또 얼마 전 만난 동갑내기 믹스견 친구와는 제법 오래 인사를 나눴다. 같은 유기견 출신에 생김새도 비슷했는데, 라떼도 동질감을 느꼈는지 평소보다 깊게 탐색을 허용했다.


라떼의 '3초 인사'의 비밀을 AI에게 물었더니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라떼의 행동은 사회성 결여가 아니라 ▲효율적인 정보 파악 ▲보호자 중심의 산책 성향 ▲불필요한 갈등 회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안녕? 반가워. 근데 난 너랑 싸울 생각도 없고, 내 갈 길 갈게"라는 아주 노련한 처세술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라떼의 행동을 인간관계에 대입해 보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얄밉게 연락하는 사람, 전화해서 본인 얘기만 쏟아내고 끊는 사람, 만나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지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라떼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인연에 깊게 몰입할 필요는 없다고. 예의는 갖추되 내 평화를 깨뜨릴 것 같으면 3초 만에 돌아서는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무례하게 선을 넘는 관계보다, 차라리 쿨하게 돌아선 '3초'가 서로의 평화를 지키는 최선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개에게서 관계 맺기의 정교한 처세를 배우는 오늘이다.


표지그림은 카시우스 마르셀리우스 쿨리지의 <곤경에 처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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