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틱톡에 '개가 평생 못 보는 장소 보여주기'라는 다정한 챌린지가 있다. 냉장고 안이나 싱크대 위처럼 개의 눈높이 너머에 있는 세상을 인간의 팔을 빌려 선물하는 일. 시각과 후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꽤 의미 있는 유희다.
산책 할 때 라떼의 필수 루틴이 있는데 소위 '전망대 올라가기'다. 집 앞 놀이터에 살짝 언덕 같은 게 있는데 거길 꼭 올라간다. 한바퀴 돌고 돌아가는 집앞이라 꼭 산책 끝날무렵 들른다. 실컷 놀았으니 집에 가자고 해도 씨익 웃으며 못들은척 전망대로 전진하는 녀석에게 난 매번 진다.
처음에는 배변을 보거나 노즈워크도 안 하면서 왜 올라갈까 의아했다. 그런데 라떼는 마치 지정된 좌석이 있는 것 처럼 같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멀찍이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개의 조상인 늑대는 높은 곳에서 포식자를 감시하거나 사냥감을 찾았다. 그래서인지 개과의 동물들은 자신의 구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라떼가 전망대를 찾은 건, 사람과 동물에 대한 관찰과 호기심 그리고 안전하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우리집 앞 약 1미터 높이의 완만한 전망대는 낮에는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논다. 그 전망대에 올라가면 맞은편에는 부모들이 지켜볼 수 있는 지붕있는 벤치가 있고 주변은 산책길로 되어있다. 지나다니는 개와 고양이, 출퇴근 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이웃들을 다 볼 수 있는 명당인 셈이다.
내가 챌린지를 통해 다양한 시야와 후각적 자극을 주기 전에, 우리 라떼는 스스로 세상의 모습을 담으려 높은 곳에 올라갔다. 매일 올라간 그곳에서 라떼는 코를 벌름대며 높은 곳의 공기를 맡고, 멀리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어쩌면 개농장이 준 괴로운 기억을 아기자기한 세상의 화면으로, 전망대에서 매일 조금씩 보상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떼가 어릴때 본 세상은 동료 개들이 사라지고 학대받는 어두운 곳이었을테니.
새벽과 밤, 주로 어스름한 시간에 라떼를 산책시키다 보니 전망대 루틴 중 재밌는 에피소드도 심심치않게 생긴다. 하루는 늦은 밤 산책을 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라떼가 전망대로 느릿느릿 나를 이끌었다. 근데 라떼가 빤히 보는 시선을 따라가보니 조명이 안닿는 맞은편 벤치에 성인커플이 애정행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민망해서 내 시선은 라떼에 고정하고 딴청을 부렸는데 라떼는 열심히 그 커플을 관찰했다. 잠시후 그 커플은 라떼의 뜨거운(?)시선이 느껴졌는지 결국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마치 처음부터 토론이라도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라떼는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다. 이웃들도 "어머 얘 이제 먼저 와서 인사도 하네. 많이 좋아졌네"라고 반길정도니. 소심하게 몸을 움츠리고 사람들의 제스처에 벌벌 떨던 라떼는 관찰을 통해 세상이 그리 험한 곳이 아니란 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따라 올라가서 잠시 서 있다가 집에 가자고 했었던 나도 이제 라떼 옆에 나란히 앉아서 세상을 본다. 그의 눈에 담길 계절을 함께 담는다.
라떼야, 이따가 또 같이 전망대 가자. 오늘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풍경이 꽤 멋질거야. 계절이 더해질수록 라떼의 기억은 화사해지고, 상처는 무뎌지길 기도한다.
표지 그림은 노먼 록웰의 Outward b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