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가 된 아빠

이사 후 벌어진 일

by 차시하

이사할 때 강아지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한다. 소음과 낯선 환경, 모르는 사람까지...터전을 아예 옮기는 거니, 적응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 아예 이삿날 호텔이나 지인집에 맡기거나, 방 하나를 먼저 비워 그 안에 두라는 얘기도 있다. 이동할 땐 친숙한 물건을 같이 갖고 다녀야 한다.


라떼가 온지 얼마 안돼서 집주인이 전세를 빼달라고 하는 바람에 우린 예상치 못한 이사를 하게 됐다. 찾아보니 미리 이사갈 동네에서 산책을 하면서 익숙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 전 우리는 미리 이사 갈 동네 산책을 하며 라떼를 적응 시켰다.


이사 당일에도 우리 가족은 다소 유난스럽게 라떼 보호를 최우선으로 움직였다. 남편이 출장으로 바빠서 엄마 아빠가 도와주셨다. 라떼가 놀라지 않도록 이삿짐센터가 오자 우린 다같이 밖으로 나갔다. 산책도 하고 차에도 쉬기도 하며 함께 움직였다.


다행히 엄마, 아빠와 온 가족이 같이 다녀서인지 이사 후 라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거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부터 생겼다. 이 전 집에서 조용했던 라떼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우렁차게 짖기 시작했다. 그것도 남편이 퇴근할때 마다. 동네 산책로에는 금세 적응한 라떼가, 정작 함께 사는 아빠의 퇴근소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사할때 오빠가 없었잖아.
라떼가 먼저 왔고.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나봐.
오빠는 침입자인거지.


내 장난스런 놀림에 남편은 섭섭해했다. 그런데 실제 라떼의 행동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니, "여긴 내 구역인데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공포 기반 경계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훈련사님에게 상담했더니, 집에 올때마다 간식을 줘서 좋은 기억을 쌓아주라고 했다.


재밌는 건, 남편에겐 꼬리를 바짝 세우고 복식 호흡으로 컹컹대는 녀석이 수리기사님에겐 꼬리를 내리고 숨는다. 결국 남편의 서열은 무섭지만 만만한(?), 짖어도 나를 해치지 않을 안전한 타겟인 셈. 오히려 진짜 낯선 사람은 짖을 엄두도 못내는 공포의 대상인 거다.


잘 이해가 안됐는데, 내 사춘기때를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다. 사춘기 시절, 밖에서는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내가 유독 아빠에게만 날 선 짜증을 부렸던 건, 아빠가 만만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받아주는 보호자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라떼에게 남편은 서열 꼴찌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신의 모든 히스테리를 받아줄 서열 0위의 안식처가 아닐까.


라떼도 그래서인지 밖에 나가서는 남편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특히 병원에 가면 남편에게 애절한 눈빛을 쏜다. '아빠 나 지켜줄거지?' 이런 표정으로.


남편은 언제 침입자에서 벗어날까. 우리는 당장 이사 계획이 없다. "그러니까 이사올때 출장을 가지 말았어야지!" 나는 시무룩한 남편을 또 놀린다.


남편은 오늘도 짖음 세례를 받으며 퇴근하겠지만, 그 우렁찬 소리는 사실 '내 구역에 온 걸 환영해'라는 라떼식의 거친 환영 인사일지도 모른다. 비록 남편만 모르는 환영회일지라도.


표지 그림은 아서 존 엘슬리의 <As Good As Ever>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대장간, 건장한 대장장이가 아이들의 고장 난 굴렁쇠를 '언제나처럼 좋게(As Good As Ever)' 고쳐주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누구보다 노련한 전문가인 대장장이지만, 해맑은 아이들과 그 발치에서 꼬리를 바짝 세운 검은 강아지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만만한 어른'이 되고 맙니다. 낯선 이방인에겐 침묵하면서 유독 아빠에게만 우렁차게 짖어대는 강아지의 모습은, 어쩌면 아빠가 자신의 모든 투정을 받아줄 가장 안전하고도 단단한 모루 같은 존재임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장간의 소란함 속에서 피어나는 이 따뜻한 신뢰처럼, 퇴근길 남편을 맞이하는 라떼의 짖음 소리는 우리 집이라는 울타리를 다져가는 가장 활기찬 소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