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계절이 이렇게 화사한데
젊은 엄마라 그런지 감각이 있네.
이거 어디서 샀어요?
몽슈슈요. 온라인에서 샀어요.
동네 산책중에 만난 이웃견주님이 라떼의 옷브랜드를 적어갔다. 항상 휴대하는 라떼용 방석도 다른 견주들이 눈여겨보고 꼭 물어보는 아이템이다. '젊은 엄마가 감각있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라떼 육아를 잘 하고 있다는 칭찬으로 들렸으니까.
사실 그런말을 듣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몸통은 길고 다리는 짧은 우리 개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찾기란 쉽지않았다. 몸통 길이에 보통 맞춰 사는데, 우리 라떼는 다리가 짧아서 접어입어야 했다. 어떤 옷은 목이 조여서 라떼가 마치 강아지 탈을 쓴거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잘 어울리는 옷을 비싼 온라인몰이 아닌 테무에서도 고를 수 있게 됐다. 긴 목은 모자달린 옷을 입으니 커버됐고 스카프도 잘 어울렸다. 짧은 다리는 반소매 옷을 입히니 괜찮았다. 라떼는 제법 어떤 옷을 입혀도 잘 어울리게 됐다. '역시 얼굴이 잘생겨서 다 잘어울린다'며, 나는 매일 예쁜 옷을 고르고 골랐다. 그덕에 라떼는 제법 귀티가 나게 됐다.
최근 내 옷은 사지 않고 있는 옷으로 코디를 잘 해입자 주의이다 보니, 라떼의 옷만 늘어갔다. 라떼도 장하게도 옷 입는걸 싫어하지 않았다. 옷을 입은 모습을 귀여워하는 내 기분이 전해져서인지, 정말 새옷을 좋아해서인지, 택배박스를 뜯을때면 라떼가 다가왔다. '새옷이 왔구나' 하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러다보니 드레스룸 한구석은 라떼 차지가 됐다. 남편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드레스룸 옷장 자리 대부분이 내옷이고 자긴 몇칸 안되는데 그마저 라떼한테 밀렸다는 문제제기였다. 남편 옷을 안쪽으로 밀며 라떼옷 자리를 만들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서 라떼의 옷장을 장만했다. 정확히 말하면 반려견 헹거다. 라떼에게 잘 어울리는 옷도 계절별로 꽤 여러벌 샀겠다, 옷장도 마련했겠다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데 우리 라떼는 잘생겼으니 완벽했다.
어느 주말 아침 남편과 나는 산책을 나와서 어느 카페를 갈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라떼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겠는데" 라며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을 가리켰다. 거울을 보니 우리 둘다 모습이 가관이었다. 값비싼 후드티를 입은 라떼 옆에는, 머리도 못 감은 채 '개 뒤를 쫓는 하인' 두 명이 서 있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며 라떼를 보며 웃던 나는, 정작 내 얼굴을 챙기는 법은 잊고 있었던 거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는 잘 하자고, 망가지지 말자고 남편과 연애때부터 얘기해왔는데, 이럴수가. 육아를 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가보다. 점점 '오늘 뭐 입지'보단 '라떼 뭐 입힐까'가 고민이 되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가 반려견동반 카페에서 출입금지 당하겠다"며 남편과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라떼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아한 모습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라떼가 창피할까 봐, 혹은 어디 가서 무시당할까 봐 라는 핑계로 나는 '노숙자 탈출용' 새 옷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시간을 쏟아 라떼의 계절을 채워주는 이 비효율적인 사랑이 꽤 마음에 든다. 꼬리를 높이 세우고 당당하게 걷는 라떼의 뒤태를 보며, 나는 무릎 나온 츄리닝 속에서도 묘한 자부심을 느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일지 모르나, 반려인의 완성은 기꺼이 추리해질 준비가 된 다정한 마음일 테니까.
라떼야,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조금 더 후줄근하게 살아도 괜찮아. (그래도 내일 배송될 내 새 옷은 좀 기대된다만.)
표지그림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 스카겐해변의 여름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