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유기동물 기사를 보며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가세요?
내 직장생활의 거의 유일한 낙은 해외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적어도 1년에 1번은 장거리 여행을 갔다와야 한해를 시작할 동력을 얻었다. 여름 휴가는 1월부터 계획해서 엑셀로 일정표를 만들고 비행기표까지 예매하곤 했다.
쿠바 하바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리스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일본 나오시마...
그래서 이런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 휴가 계획을 묻곤 한다. 올해는 또 어떤 나라, 어떤 도시로 무슨 테마를 잡아 휴가 계획을 세우나 궁금해서다.
그런데 작년엔 초유의 일이 생겼다.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간 것이다.
라떼 때문이었다.
업무시간, 엄마에게 온 한장의 카톡사진엔 내가 아껴신던 핑크색 애나멜 샌들이 아작이 나있고 신발을 담아두던 종이백도 갈기갈기 찢어져있었다. 급히 출근하면서 중문을 안닫고 나간게 화근이었다.
다음날은 문을 닫고 나갔는데, 알고보니 신발장 아래 놓여있던 내 검정색 중부츠 한짝도 이미 물어뜯어놔서 못쓰게 돼있었다.
며칠뒤, 욕실 문이 살짝 열려있던 모양이었다. 고무로 된 내 욕실화를 또 분해해놨다.
찾아보니 분리불안이란다.
내 신발만 골라서 뜯어놓은탓에 남편은 이마저도 섭섭해했다.
"아니 자기 신발만 뜯어놨네"
문제는 그 뒤였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집에 오니 톱밥 같은게 문앞에 쌓여있었다. 중문도 잘 닫고 욕실도 닫고 나가자, 이번에는 우드 중문을 물어뜯은 것이었다. 맙소사... 입안에 나무조각이 박혀있진 않은지 살폈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역시나 해맑은 라떼는 중문 뜯으면 안된다는 꾸지람에 모르는척 고개를 돌렸다.
결국 우리는 출근하며 현관문을 닫음과 동시에 웹캠을 켜고 라떼에게 소리를 치게 됐다. 남편과 나는 지하철이건 카페건 휴대폰에 대고 단호하게 "라떼, 안돼! 안돼!"를 외쳐댔다. 그럼 다시 문앞에서 서성이던 라떼는 거실로 돌아가고, 그러다 다시 문앞으로 가면 우리는 "안돼"를 연발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하루는 지방에 있는 시댁에 가는 날, 노즈워크를 이리저리 해두고 나온 우리는 또 웹캠을 키며 서울역을 향했다. 그런데 한동안 괜찮던 라떼가 정말 미친듯이 나무 중문을 뜯고 있는게 아닌가. 그날은 유독 아무리 '안돼'를 외쳐도 라떼가 멈추지 않았고 나는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쉬고 있던 친정엄마에게 SOS를 쳤다. 엄마가 오자 그제서야 라떼는 꼬리를 흔들며 엄마를 반기고 안정됐다.
이후 우리는 수의사 선생님과 훈련사님의 조언을 받고, 엄마의 도움을 받고, 수십개의 유튜브를 시청한 끝에 분리불안을 없앨 수 있었다. (자세한 분리불안 없앤 과정은 추후 다루겠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분리불안을 없애기위한 여러 노력에 라떼는 좋아졌지만 우리는 캐리어에 짐을 싸면 이 녀석의 눈빛이 흔들린다는걸 알게 된 후, 해외여행을 포기했다. 직장생활때문에 불가피한 분리는 어쩔수 없더라도, 우리가 통제가능한 라떼가 불안해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기로 한거다. 대신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그래서 캐리어에 짐을 싸면 함께 여행을 간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로 했다.
이번엔 어디로 갔다 오셨어요?
국내로요...저희 개 때문에
가족이 된 우리 라떼 덕에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반려견주로서 여행을 다니는 즐거움도 새롭게 얻은 기쁨이다.
하지만 내가 여행의 우선순위를 바꾼 사이 TV 뉴스에선 씁쓸한 기사가 흘러나온다. 여름 휴가철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1년 유기동물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설마 휴가를 가면서 둘 데가 없어서 버리는 걸까?봐줄 사림이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누군가에게 휴가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지만, 어떤 개들에게 휴가는 유일한 세계였던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는 '추방'이 된다니. 이제 반려견 반려묘주에게 이들이 키울 능력이 되는지, 까다로운 검증을 거치는 자격증이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오늘도 라떼와 함께하는 여행을 위해 널찍한 잔디밭이 있는 반려동물 동반 펜션을 예약했다.
라떼, 우리 또 같이 여행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