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의사, 텐팅 뒤 단상
따르릉.
"응급실에 있는 복막염 환자인데 대장 천공이 의심되고 바이탈이 안좋아서 노에피를 걸었는데도 혈압이 60대.."
이후의 말은 어차피 의미도 없다. 환자 엄청 안좋구나.
" 빨리 해야겠네요.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빠를 수록 좋습니다"
" 준비되는 대로 빨리 환자 올리세요. "
제일 어렵고 만나고 싶지 않은 환자가 패혈증이라면, 더 안만나고 싶은 사람은 약 걸고 있는 패혈증 환자이다.
포커스가 명확한 패혈증 환자는 그것을 제거하러 수술실로 올라오고, 그 포커스를 떼어내면 대개는 좋아지지만 그때까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그 사람의 속도를 늦추는게 우리의 일.
환자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안좋았지만, 배를 열고 포커스를 떼어내자 좋아져... 야하는데,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늦은 것일까. 아니야, 이겨내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인가봐.
바이탈 잡는 약을 정말 퍼부어주는 수준으로 주면서 사신이 끌고 가려는 환자를 간신히 잡고 있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이고비만 넘기면.. 하는 순간들의 연장. 짧지 않은 수술시간이 지나고, 그런말 할 줄 모르는 외과 교수님이 나가시다 멈칫 하며 말씀하셨다.
" 마취과 선생님도 수고 많았어요"
환자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 중환자실로 모셔다 드리며,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환자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이 났다.
"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우린 정말 최선을 다했다. 더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을 것 같아."
전공의에게 이야기하고, 집에 오는 차를 탔다.
왜 포커스가 나가고도 좋아지지 않은 걸까. 되새기며 생각하다보니, 혹시 내가 놓친게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이제서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태 정신이 없어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게 있었을까. 중환자실 올라가서 중환자 진료부에서 내가 놓친 것을 발견하고 환자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면, 환자분에겐 다행이지만, 나는 정말 엄청 창피하겠다.
앞으로 이 환자 매니지는 어떤 방법으로 하려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뭐가 있을까.
다음날 출근해서 약을 얼마나 줄였을지, 환자가 얼마나 좋아졌을지 궁금해하며 차트를 열었다.
클릭.
수술 2시간 후.
약을 최대한으로 올려도, 바이탈이 잡히지 않아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사망선언함.
아. 이미 사선을 넘은 사람을,
내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었구나.
.. .. ...
사실 이 글은 잘 쓸 자신이 없었다.
수술실에서, 좋아져야 하는 타이밍부터 급격히 안좋아지기 시작한 산소 수치로 폐가 제 기능을 잃었음을, 나오지 않기 시작한 소변으로 신장도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그것은 패혈증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게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웠을뿐. 어떻게 해도 좋아지지 않는 환자앞에서 느끼던 무력감. 하지만 어떻게든 이 환자를 잡고 있어야하는 두려움. 사신과의 힘겨루기. 더 센 힘으로 이사람을 산 사람쪽으로 끌고 와야하는데. 나는 힘이 부족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약을 선택했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까.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 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방법을 누군가는 생각했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교수님이었다면. 이사람이 살았을까.
어쩌면.
차라리 죽었을 사람을 내가 붙잡고 간신히 살리고 있는 것이었기를. 그렇게 생각한 순간도 있었을까
내탓이 아니고 나는 잘하고 있었는데, 환자 탓이라고. 말하고 싶던 순간이 한순간도 없었던 것은 확실할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찰나때문에 환자분이 이렇게 되신건 아닐까
보람있으시겠어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시잖아요.
며칠전에 누군가 말했다.
- 글쎄요. 어떤 의사라도, 사람을 본인이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이상한 사람일 것 같은데요.
환자는 원래 사는거에요. 살 사람을 살린다고 말할수는 없지요. 죽일수는 있어도.
내가 말했다.
사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는 내게 등을 보이고 가셨다. 그를 끝까지 잡아두지 못했다.
부족한 나를 만난게, 그에게 원망이 아니길.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