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가 만들어지는 동안

by 송지영

지수의 하루는 작업대 앞에서 시작해 작업대 앞에서 끝난다. 알바생이 열 명이나 있어도 주문량을 따라잡기엔 빠듯하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얼굴에 스치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이 보인 날에는, 출고를 기다리는 박스가 어김없이 더 높이 쌓인다.

작업대 양옆으로 사람들이 늘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 일정한 박자가 겹치며 공장 안에는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그 흐름을 따라 움직인 손끝에 끈적임이 남고, 공기에는 단내가 얇게 깔린다. 오후 여섯 시, 스티로폼 박스들이 차례로 입을 다문다. 테이프가 감기고, 송장이 붙은 상자들이 바닥에서부터 위로 쌓여간다. 그제야 지수의 하루에도 숨 고를 틈이 생긴다.

주변에서는 농담반 부러움 반을 섞어 말한다. ‘두쫀쿠’, 두바이 쫀득 쿠키 코인을 제대로 탔다고.


지수는 나하고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사촌동생이다. 그녀의 케이크는 돈암동과 해방촌까지 이어진 카페들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듬어졌다. 외국인 남편이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온 레시피로 빵을 굽고, 지수는 그 빵에 놓일 접시와 장식을 더했다. 이국적인 케이크들을 하나둘 찾는 손님이 생겼고, 가게는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카페는 늘 열려 있어야 했고, 손님 응대와 공간을 돌보는 일은 끝이 없었다. 차라리 몇 가지 품목을 만들어 전국으로 내놓는 편이 더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젊은 부부가 성실하게 일궈온 시간의 궤적을 나는 곁에서 보아왔다. 지수가 공장을 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투자자로 그 계획에 합류했다.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공장에 들어서면 이상하게 마음의 긴장이 풀렸다. 오래전부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좋아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달콤한 냄새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움파룸파들이 떠올랐다.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한 그 무리에, 나도 섞이고 싶어졌다.

일머리가 좋은 지수는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위생인증(HACCP)을 받아냈다. 납품할 곳들이 하나둘 정해지면서 공장은 제 모양을 갖춰갔지만, 집 안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게 정적이 늘어갔다. 마음이 버거워질 때마다, 나는 공장으로 나가 손을 보탰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생크림을 끝없이 얹다 보면, 머릿속을 채우던 불안들이 하나씩 밀려났다. 울적할 틈이 없게 흘러나오는 농담도 한몫했다.

“사장이 부부고 가내수공업이면 무조건 걸러야 대.”
“안 좋은 조건은 다 모였네. 무서운 곳이야, 여기.”
“사장님, 나빠요. 먼저 쉬자는 말을 절대 안 해.”

“아니, 알아서 편하게 쉬라니까요. 왜 안 보던 눈치를 봐요.”
그 사이에도 작업대 위의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카페를 세 곳이나 운영하던 젊은 여사장이 페라리를 타고 공장을 찾았다. 두바이 초콜릿으로 재미를 본 그녀가 백화점 팝업을 제안했다. 우리가 만든 컵케이크 위에 그녀의 두바이 초콜릿을 올리자는 아이디어는 곧 성사되어, 그날 이후 공장은 숨 돌릴 새 없이 돌아갔다.


활기도 잠시, 그 흐름은 끝까지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일이 궤도에 오르면 어김없이 물러날 이유가 생기던 나의 오래된 징크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 세계의 균형이 무너진 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은 텅 비었다. 집 전체가 나에게 허락된 작업실처럼 변했다.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답답했다. 집 안에서는 적어도, 웅크리고 싶지 않았다.

햇살이 오래 머무는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빛이 창을 한참 지나 카펫 위를 넓게 덮었다. 그 아래, 가장 따뜻해 보이는 자리를 귀신같이 찾은 반려견 해리가 몸을 늘려 기지개를 켰다. 찻잔에서 올라온 김이 빛에 부딪혀 흩어졌다. 그 장면들을 거듭 바라보는 일이 하루를 견디는 최소한의 양분이 되었다.


그 빛 앞에서 매일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이 켜질 때마다, 덮어두었던 마음이 함께 열렸다. 엉켜버린 목걸이의 매듭을 바늘 끝으로 풀어내듯, 어지럽던 마음을 문장으로 옮겼다.

“쓰면 살아져.” 친구의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시간을 가늠하지 않은 채 글에 붙들려 있다가, 허리가 굳고 눈이 흐려질 즈음에서야 이렇게는 오래갈 수 없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 to 5.

직장인처럼 근무 시간을 정해놓고 거실 테이블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함께 저녁을 먹었고, 주말이면 미술관이나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 규칙 덕분에 일상의 온도를 잃지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 지수의 하루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새 거래처를 찾지 못한 채 주문을 기다리는 날들이 이어졌고, 공장을 정리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들렸다. 버텨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그 구간을 지나, 나는 한 권의 책을 썼다. 그사이 지수는 두바이 쫀득 쿠키의 흐름을 다시 만났다. 멈칫하던 공장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게도 주어질 수 있었을 하루를 가늠해 본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나 역시 달콤한 향에 둘러싸여 카다이프와 마시멜로를 손끝으로 굴리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까.

그 상상은 거기까지 일 뿐, 다른 감정으로 번지진 않는다. 삶이 언제나 계획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뿐이다. 준비한 시간 대신 예고 없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각자의 하루는 다른 요구를 한다. 속도를 내야 하는 날이 있고, 발걸음을 늦춰야 하는 날도 있다. 방향을 고쳐 잡지 않으면 안 되는 때도 찾아온다. 그 차이는 우열이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삶이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지수가 보내온 초콜릿이 떠올라 상자를 연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바삭함이 어금니를 타고 퍼진다. 달콤함이 혀끝에 남아 있는 사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넘긴다.

커튼을 열어젖힌다. 햇살이 거실 안으로 번지며 영역을 넓힌다.

노트북을 켠다. 깜빡이는 커서 너머로, 오늘이라는 칸이 열린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