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를 오래 기억해 준다는 건, 내 존재가 함부로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약속과도 같다. 무엇을 견뎌왔는지 보다 텅 빈자리만 선명하던 시절에도, 매년 변함없이 도착하던 한 사람의 안부는 내가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했다.
주혜는 1999년 이후로,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연락을 했다. 인사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그녀는 늘 선물까지 챙겼다. 주혜의 선물은 보내는 사람을 닮아 한결같이 건강했다. 부모님이 지으신 사과즙, 차나 영양제 같이 몸에 좋은 것들. 감자빵을 처음 먹어본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이미 그녀의 깐깐한 검증을 통과한 물건들이 생일 무렵이면 나에게 도착했다. 그녀의 선물은 과하지 않았고, 성의는 묵직했다.
생일은 존재함을 축하받는 날이지만, 그 기쁨은 생각보다 쉽게 휘발된다. 그날이 지나면 인사는 흩어지고, 일상은 다시 건조한 평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주혜의 메시지는 달랐다. 짧은 글 안에 그해의 소식이 눌러 담겨 있었다. 하루치 기쁨이 아니라, 한해를 통째로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만큼은, 그녀의 기억 안에 머물러 있는 나로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내가 한국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 의례처럼 얼굴을 본 게 전부다. 평소에 대화를 자주 주고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정확했다. 세월이 흘러도, 환경이 바뀌어도, 그날만큼은 비켜간 적이 없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반복이 더 눈에 띄었다. 어느 해, 불쑥 물었다.
“너는 어떻게 매해 기억해?”
몇 번을 묻고 나서야 주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언니랑 날짜가 같아요. 저는 음력으로 지내요.”
음력이지만 같은 날이란 게 신기했다. 그해부터 우리는 같은 날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시작을 축복하는 사이가 됐다.
주혜는 대학교 후배다. 그녀가 입학했을 때, 나는 학생회장이었다. 5학년이 되도록 졸업도 안 하고 배회하던 괴짜 선배를 그녀는 왜 그렇게 챙겼을까. “언니, 밥 사줘요.” 같은 말을 쉽게 꺼내는 후배는 아니었다. 오히려 “언니, 괜찮아요?”라고 묻는 쪽에 가까웠다. 말수가 적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되짚어보면 그녀는 늘 장면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과 엠티 출발 직전의 장면처럼. 주혜는 다른 단과대를 다니던 내 남자친구와 나란히 서서, 엠티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본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외쳤다.
“너는 왜 안 가고 거기 있어?”
그녀는 대답대신 웃으며 사람들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주혜는 늘 그랬다. 사건의 한복판이 아니라, 소란이 비켜가는 쪽에 서 있었다.
졸업 후에도 캠퍼스의 시간은 그녀를 통해 흘러왔다. 학교에 남아 학업을 이어가던 주혜는 경조사부터 교수님들의 근황, 누가 임용이 됐는지, 가끔은 사고 치고 사라진 이들의 소식까지 전해주었다.
내가 캠퍼스 커플로 결혼에 이르렀듯, 주혜 역시 나와 동갑인 동문과 가정을 꾸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다른 도시와 다른 나라를 오가며 살게 됐다.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면서 왕래는 뜸해졌지만, 생일이라는 징검다리를 빠뜨리지 않았다. 왁자지껄하게 술잔을 부딪치던 99학번들 중, 끝내 남은 관계는 주혜 하나였다.
시간이 쌓여가며 축하는 경조사로도 이어졌다. 몇 해 전, 주혜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가족들 먹이려고 사과농사를 짓는다던 주혜 아버지의 사과즙은, 그해를 끝으로 더는 오지 않았다. 형제가 많고 우애가 두터운 집안이었지만, 상실이 남긴 구멍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생일 다음 날이 아버지의 기일이라, 그즈음 오가던 문자에는 어딘가 무거운 기운이 실려 있었다.
그 무렵, 나 역시 발 디딜 곳이 사라진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혜는 그해에도 예년처럼 축하를 건넸다. 삶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도착한 그 한 줄은, 나를 잠시지만 이전의 위치로 데려다 놓았다.
사람 사이의 친함은 단순하지 않다. 접촉의 빈도가 마음의 농도를 증명하지 않는다. 주혜는 내 삶의 앞줄에 있지는 않았지만, 빠짐없이 불리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나를, 자신이 알고 있던 학생회장 언니로 그대로 두었다. 그 변함없는 시선이,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주었다.
“언니, 잘 지내죠? 언니의 그날이 지나야 제 한 해가 정리되는 기분이에요. 신랑이 요즘 좀 아파요. 아무래도 건강이 제일이더라고요.”
나는 짧게 고맙다고 답했을 뿐, 더 묻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다른 경로로 그녀 남편의 병세가 생각보다 위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를 보내고, 남편의 병까지 겹친 시간을 주혜는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의 생일날, 배달 음식 상품권을 보냈다.
“주혜야, 생일 축하해. 추우니까 시켜 먹어.”
“언니, 제일 좋은 선물이네요. 내 대학생활에 언니가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 괜찮은 언니로 남고 싶은 마음과, 말해지지 않은 사실이 서로를 밀어냈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죠? 나이 들어갈수록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네요. 하루에 한 번은 크게 웃을 수 있는 날들 보내길 바랄게요. 언닌 꼭 그럴 것 같아요!”
나의 고맙다는 대답에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참, 서진이가 고3인데... 이제 다 끝났을까요? 좋은 결과 있었길요.”
어떤 진실은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건너갈 언어를 찾지 못해 삼켜진다. 언젠가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주혜가 지나온 시간도 함께 들어야지.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며, 슬픔도 그리움도 아닌 무덤덤한 얼굴로 어떤 표정 하나쯤 나누며.
그때까지 나는 주혜가 놓아둔 징검다리를 건너야지. 같은 날, 같은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나는 나를 덜 의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