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더슨 쿠퍼가 묻고, 이윈 리가 답하다.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엄마가 있다. 2017년에 열여섯 살 첫째를, 2024년에 열아홉 살 둘째를.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소설가인 이윈 리(Yiyun Li)다. 그녀를 인터뷰한 사람은,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스물한 살에 형을 자살로 보내야 했던 CNN 앵커 앤더슨 쿠퍼다. 성급한 호응도, 짐작하는 표정도 없는 진행자와, 가장 낮은 목소리로 가장 먼 곳까지 닿는 작가가 만났다. 두 사람의 대화는 숨소리마저 놓칠 수 없게 했다.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의 경계가 지워지는 순간들도 묵직했다.
https://youtu.be/zSzhgg60YXs?si=CWxGAHpnsyh4mhkL
쿠퍼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All There Is with Anderson Cooper'는 상실과 애도에 대해 매 시즌 다양한 게스트를 초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주제를 충분히 길게 다루는 목소리를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원서나 외국 영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이 팟캐스트에서, 다양한 슬픔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인터뷰 하나하나가 책 한 권의 무게를 갖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깊이에는 쿠퍼의 배경이 한몫했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의 철도재벌 밴더빌트 가문의 후손이었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던 쿠퍼는 그 배경을 뒤로하고 스스로 전장을 누비며 커리어를 쌓아 올렸고, 냉철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보도 스타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런 강철 같은 사람에게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가족들과의 이별이었다. 201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족사진 속에 자신 한 명만 남았다는 사실이 그동안 미뤄두었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그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오래 밀쳐두었던 슬픔을 드디어 꺼내 보게 되었다.
https://brunch.co.kr/@time-lapse/16
이윈 리를 처음 알게 된 건 Fifth Life 작가님의 소개로 <Where Reasons End>를 읽게 되면 서다. 리가 첫째 아들 빈센트를 보내고 쓴 소설이다. 떠나간 아들과 어머니가 나누는 상상 속 대화로, 슬픔과 언어의 한계를 동시에 탐색한다. 그녀의 문장들은 감정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상실의 비정함을 전달한다. 아들의 목소리로 떠남을 서늘하게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이윈 리는 현재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비극적인 상실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독보적인 필치를 가진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그녀는 둘째 제임스까지 떠난 뒤, 2025년 <Things in Nature Merely Grow>를 출간했다. 그 신간에 대해 쿠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인터뷰를 듣고 느낀 점을 정리해 글을 쓸까 했다. 하지만 이들의 대담에 무언가를 덧붙일수록 해석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질문과 심연에서 길어 올린 답이 만들어낸 대화의 농도를 온전히 전하고 싶어, 번역하고 편집한 인터뷰를 그대로 옮겼다.
리: 자살로 아이를 잃은 부모에 대해 사람들의 첫 질문은 이런 것일 거예요. "도대체 부모가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얼마나 괴물 같은 부모였길래." 그 질문은 어쩌면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누구도 묻지 않는 것이 있죠. 그 부모들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요.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뒤, 같은 경험을 한 부모들을 많이 만났어요. 우리 모두 신호를 보았고, 아이들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하지만 부모에게는 한계가 있어요. 늘 그렇죠. 부모라는 역할이 제약이 많다고 생각해요.
쿠퍼: 저는 어린 나이에 상실을 겪었어요.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고, 최근 몇 년 사이에야 비로소 그것을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리: 왜 그때는 느끼지 못했나요?
쿠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열 살이었어요. 너무 두려웠어요. 아버지는 제게 전부였고, 그 부재는 지금도 여전히 견디기 어려운 무게예요. 저와 형의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이상할 정도로요. 그 침묵이 남긴 고립이, 지금에서야 얼마나 컸는지 느껴집니다.
리: 죽음은 사람을 늘 고립된 자리로 데려가는 것 같아요.
쿠퍼: 빈센트와 제임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리: 둘은 정말 가까웠어요. 빈센트는 시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어요. 기쁨과 고통을 모두 깊게 느꼈죠. 그래서 아들의 죽음이 완전히 뜻밖의 일은 아니었어요. 상담사는 언제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으니까요.
쿠퍼: 오랜 시간 걱정했다고 하셨지요.
리 :빈센트가 열 살이었을 때, 나는 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네가 여기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
쿠퍼: 어떤 신호를 보셨나요?
리: 대부분의 아이들도 감정을 느끼지만, 빈센트는 세상이 얼마나 암울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말하곤 했어요. 죽음에 대한 시도 썼죠. 가끔 방에 몰래 들어가,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어요. 도망가진 않았는지, 이미 떠나버린 건 아닌지.
제임스도 감정은 깊었지만,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죠. 대신 빈센트와는 아주 또렷하게 소통했어요. 그런데 형이 죽고 난 뒤,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제임스가 대화를 나누던 유일한 사람이 형이었거든요.
쿠퍼: 여섯 살 때, 제임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요. “엄마, 나 아직도 모노포비아에 시달리고 있어요.”
리: 모노포비아. 고독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단어죠. 그 어린 나이에 그 단어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자신의 상태를 가장 적확하게 설명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낸 게 아닐까 싶어요.
쿠퍼: 형이 떠나고, 제임스에게서 보였던 유일한 변화는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고 쓰셨죠.
리: 네, 6년 동안 긴 머리를 유지했어요. 형이 그랬던 것처럼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였겠지요.
쿠퍼: 책에서 이런 문장을 쓰셨어요.
‘아이들의 예민함과 고유함을 존중하고,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자라 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와 존중이다. 그들의 삶을 끝내기로 한 선택까지 포함해서.’ 이건 굉장히 특별하게 들립니다.
리: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결정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으실 거예요. 저도 시도했었지만, 그건 살기 싫어서가 아니에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 친구들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요. 고통이 너무 커서, 그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이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빈센트가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아들이 고통받아온 시간을 지켜봤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존중해야 한다고. 아이는 애썼어요. 6년이나.
제임스는 빈센트가 죽고 6년 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 6년 동안 제임스는 고립되어 있었어요. 그 외로움은, 엄마가 대신 감당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어요. 제가 당신에게 형제를 잃는 이야기를 물어본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렇게 가까웠던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남은 사람의 일부도 함께 사라져요. 그래서 저는 두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려고 해요.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리에서 생각하려 했어요.
부모의 고통은 감당할 수 있어요. 살아낼 수 있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일,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에요. 하지만 아들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그보다 더 큰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 결정까지 포함해서.
쿠퍼: '전적인 수용'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제임스가 죽은 후, 그것이 자신을 지탱해 줬다고 쓰셨습니다.
리: 왜, 어떻게, 만약에. 이런 질문들은 어떤 재난을 만나든,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빈센트가 떠났을 때도 그랬죠. 하지만 제임스가 갔을 땐,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 질문들은 사실에 맞서는 반론일 뿐이란 걸 알게 됐죠. 쓸모없을 뿐 아니라, 제임스라는 존재 자체를 침해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현실에 발 붙이려 했어요.
"제임스는, 빈센트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같은 방식을 택했다."
쿠퍼: 그것이 작가님에게 '기꺼이 받아들임' 인가요?”
리: 네. 희망 섞인 가정이나 질문이 아니라, 사실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이 개념은 마샤 리네한의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에서 가져온 것이에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사실로 돌아가요.
"빈센트는 죽었다. 그리고 제임스도 죽었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그 선택을 했다. "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죠. 거기에 대해 논쟁할 수는 없어요. '싫다', '이건 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니까요. 소리를 지를 수 있지만 달라지는 건 없죠. 저는 이 사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저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거예요.
쿠퍼: 당신은 아이들을 떠올릴 때, 고통 없이 생각할 수 있나요?
리: 아직은 안 돼요. 앞으로도 안 되겠죠. 우리는 부모니까요. 아이를 떠올린다는 건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 포함하는 일인데 내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게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니까요.
쿠퍼: 이 문장을 읽어볼게요.
‘아이들은 떠나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부모들이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이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리: 부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죠. 죽을 때까지, 그들을 안고 살아가요.
쿠퍼: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리: 선택지는 둘뿐이 이예요. 살아가지 않는 것, 혹은 계속 살아가는 것.
우리는 하루씩 살아가요. 빈센트가 떠났을 때,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아들을 생각하며 보냈어요. 남편의 상담사와 나의 상담사가 똑같이 말했던 게, ‘6개월쯤 지나면,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은 아들을 생각할 거다.’였어요. ‘생각하지 않게 된다’가 아니라,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죠. 남은 몇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도, 아이는 계속 맴돌아요.
저는 우리가 이 상처를 ‘치유했다’고 느끼게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것이 고통이고, 사라지지 않을 상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요.
쿠퍼: 작가님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책에 있어요.
“우리의 삶은 다시는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게 지내고 있다.”
리: 네, 지금도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괜찮게 지내고 있어요.
완전히 괜찮아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문제는 아니에요. 이 상태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올해의 벚꽃이 절정을 이룬 주말이었다. 눈에 담고 싶어 상춘객 행렬에 슬쩍 끼어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삶은 슬픈 채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웃기도 하며 흘러간다. 곧 지겠지만, 지금은 피어 있다. 피고 지는 일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
*영상, 사진 출처: CNN 'All There Is with Anderson Cooper' 유튜브, 이윈 리(Yiyun Li) 인터뷰
인터뷰의 일부만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