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의 무의미함

Where Reasons End

by Fifth Life

Yiyun Li 작가의 [Where Reasons End] 라는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쳤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또다른 유명작인 [Book of Goose]를 읽게되면서였다. 두 책 모두 층위가 깊은 상실을 다루고 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넘어서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관계의 상실을 세밀하게 해부한다.

아들 Vincent를 추모하며 책 시작 전에 저자가 남긴 헌사 문구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가던 시간에 대한 상실과 삶의 의미를 잃게되는 상실에 관한 글을 자주 쓰던 요즘이라 그런지 다시 이 책에 손이 갔다. 처음에 샀을 땐 오디오북으로 흘려듣 듯 페이지를 넘겼기에 돌이켜보니 기억에 남는 문구나 장면이 없는 듯 해서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자살시도 생존자임과 동시에 두 아들 모두 자살로 잃은 유가족이다. [Where Reasons End]는 2017년, 16세 첫째 아들을 자살로 잃은 직후 집필한 작품이다 (2024년, 둘째 아들 James 마저 떠났다). 이러한 배경을 알기에 읽게된 책이었지만 막상 다시 읽기 시작하니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아 문장 하나하나의 목적을 현미경 아래 세포를 관찰하듯 분해하고 해석하며 읽어야 했기에 두께가 얇은 책임에도 완독까지 꽤 오래 걸렸다. 영어가 제2의 모국어인(?), 생의 절반을 미국에서 살아온 나도 사실 이해가 쉽지 않은 문장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번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 중엔 읽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거란 아쉬움이 챕터마다 느낀 나만의 해석을 이 공간에 기록해야 할 이유가 됐다.


저자의 직접적인 상실을 담아낸 [Where Reasons End]는 죽은 아들과의 가상대화 라는 구조로 전개된다. 시간의 경계를 벗어난 공간에서 어머니와 아들 Nikolai가 나누는 상상속 대화를 시작으로 저자는 삶의 가장 깊은 슬픔과 마주한다. 현실에서는 더이상 나눌 수 없는 대화를 상상의 공간에서 이어가며 아들을 언어로 다시 불러온다. 책 전반적으로 Nikolai는 엄마의 문장들을 계속 지적하고 비틀고 말장난 하는 듯한 질문들을 던진다. 감상적인 표현이 나올 때 유독 그런다.


Chapter 1

책의 시작 부분에서 엄마가 Nikolai에게 말한다.

I wish you knew how much you are missed by people.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널 그리워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

그말에 Nikolai는 이렇게 받아친다.

Mommy, you know that's a cliché.
엄마, 그건 너무 진부한 말인 거 알잖아.

그러자 엄마는 묻는다.

What if life could be saved by clichés?
진부한 말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엄마는 남겨지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을 하고, 아들은 그 말의 공허함을 짚고, 엄마가 절박함으로 다시 맞서는 이 부분은 언어의 한계를 꿰뚫는 통찰이다. 그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엄마에게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Nikolai는 사실 무례한게 아니라 "people miss you" 같은 문장이 살아있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문장이지 고통속에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구조도 제공하지 못 함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엄마의 질문은 사실상 반박이라기 보다는 패배 선언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말이 빈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 말 밖에 없었다는 고백...

저자가 이 대화를 통해 전하는 메세지는 이렇다. 자살을 "말 한마디로 막을 수 있는 일" 이라고 단순화 해서는 안된다는 것. 동시에, 말의 무력함을 핑계로 침묵해서도 안된다는 것. 그녀는 독자에게 묻고있다. 우리가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들이 정말로 상대의 고통에 닿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덜 무력하게 만들려는 말에 불과한지.


Chapter 2

이 챕터는 현실에서 끝난 대화를 끝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 위에서 시작된다.

Now we have our own rules.
이제 우리만의 규칙이 생겼네.

엄마가 두번째 챕터를 열며 Nikolai에게 던진 말이다.

현실이 뭐라 하든 나는 너와 계속 대화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Nikolai는 농담과 체념이 섞인 어조로 받아친다.

As though we haven't always lived by our own rules
언제는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대로 살지 않았던 것 처럼 말하네.

그 말에 엄마는 "그랬었나?" 라며 과거를 돌아본다. 그러다 잠시 멈칫한다.

I was confused by the tense we used.
우리가 사용한 시제에 (have lived) 혼란스러워졌다.

라고 말하며 아들이 죽은 현실을 어떤 문법으로 정리해야 하는지에 혼란을 느낀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쓰는 현재형과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쓰는 과거형, 그 사이 어디에도 아들을 정확히 놓아둘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만든 애도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고 그 세계의 언어는 시제가 없음을 곧 깨닫는다.

사회는 Nikolai가 죽자마자 그를 있었던 사람으로 정리해버리지만 엄마에게 그는 여전히 있다.

기억속에, 언어속에, 그리고 질문 속에.

Timeless is the world we are making, tenseless its language.

그녀의 애도는 과거에 멈춰있지 않다.

Chapter 2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 부분이다.

To obsolete is to let age, from which death is exempted.
낡는다는 건 닳아없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죽음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남겨지는 이들에게 죽음은 결코 낡거나 오래되는 것이 아니다. 늘 현재형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죽었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기에. 그래서 애도를 하는 것 또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늘 이어지는 상태로 남는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현재의 세계로 아들을 불러내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시간이 치유해준다는 익숙한 서사를 뒤집는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상실은 늘 그 자리에 뿌리를 심은 듯 머문다. 그렇기에 저 문장이 사별 이후의 현실을 논리적이면서도 투명하게 포착한 것 같아 쓰라리게 남는다.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벽을 넘어 아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처절한 노력을 담고있다. 슬프지만 단순히 슬픔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분석의 책도 아니다. 대신 언어의 한계를 차갑고도 정직하게 마주한다. 언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언어로 붙잡으려 몸부림 치듯.

아들의 자살은 해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견뎌나가야 하는 상태임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순간, '왜' 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래서 제목을 [Where Reasons End]로 정하지 않았나 싶다. 아들의 죽음에 자꾸 이유와 설명을 요구하는 세계에 더이상 응답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해야 할 대상보다는 존재했던 사람, 끝까지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그리움 속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이 책을 통해 남겨두려는 시도로 느껴진다.



나머지 챕터들의 대한 기록은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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