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작년 이맘때였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탈진 상태로 오래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부재가 떠오르는 순간이면 발밑이 꺼지듯 아찔해져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어요. 믿기 어려운 현실은 시간이 흘러도 끝내 비현실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끝에서 내게 남은 건 단 하나, 이 애끓는 마음을 기록하고 싶다는 불가항력의 충동이었습니다.
9월의 어느 날, 남아 있는 기운을 끌어모아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다기보다, 감당할 수 없는 속을 털어낼 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슬프고 아픈 글을 누가 봐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빠른 응답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내보낸 첫 연재가 <널 보낼 용기>였어요.
글을 올리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믿기 어렵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그 잔인한 시간을 하나하나 들춰냈을까요.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들끓던 제 심정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원고 앞에 앉는 일은 언제나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었고, 그 불 속에서 끝도 없는 물을 토해내듯 울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글을 올리고 나면 숨이 트였어요. 뭉근하게 조여 오던 명치끝이 풀리며,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쓰라린 글을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일이, 누군가의 한 주의 시작과 끝을 망치는 건 아닐까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돌아온 건 전혀 다른 빛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매일의 기도를 약속했고, 또 어떤 분은 어디에도 꺼내지 못한 상실을 글에 기대어 고백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열어둔 상처가 나를 살리고, 다른 이들의 내면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슬픔은 한 가지 색으로 머물지 않고 고통은 수없이 다른 결을 지니며, 삶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격렬하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련한 엄마라고 스스로를 묶어 두었습니다. 상실의 기억을 해체하며 기록하는데, 그 글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다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개인의 상처가 공동의 언어가 될 때 삶은 다시 이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혹자는 브런치를 ‘불행의 모음집’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성공담보다, 부서지고 깨진 자리에서 흘러나온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겠지요.
이어령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남긴 책의 제목을 <눈물 한 방울>이라 붙였습니다.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의 곁을 지킨 영인문학관 관장 강인숙 선생님은 이 눈물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이야말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삶과 고통을 글로 나누며 서로의 내면에 공명하려는 작가들이 브런치에 모였습니다. 서로의 문장에 기대어, 향상과 치유를 꿈꾸며.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내 삶의 결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비극을 나만의 비밀로 가두는 대신, 그것을 열어 우리 모두의 과제로 삼는 일. 그 길 위에서 나와 같은 상실을 겪은 이들과, 여전히 버텨내고 있는 아이들의 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널 보낼 용기>가 세상에 나옵니다. 감사하게도 “필요한 책”, “우리가 내야 하는 책”이라고 말해주는 좋은 출판사와 함께 청소년 자살 문제와 자살유가족이 겪는 사회적 편견을 마주하려 합니다. 비록 열일곱 딸을 잃었지만, 이 여정이 더 많은 딸들과 아들들을 지키는데 온전히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나를 붙들어 준 브런치스토리. 그 시작은 내 삶을 다시 쓰게 만든 첫 문장이 되었습니다.